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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통상과 안보는 분리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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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2월 23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미 백악관 선임고문.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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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생각은 안보의 논리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이라며 “서로 다르게 궤도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북미대화가 굴러가는 논리와 통상 문제가 굴러가는 논리는 다른 것”이라 언급했다. 미국이 바로 얼마 전 전자·태양광·세탁기 등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데 이어, 철강마저 제재 대상으로 삼은 데 대해 나온 발언이다.

정부 여당은 상당히 당혹스러울 법하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위해 방한한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우리 정부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철회를 요청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오히려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으니, 정부는 당연히 화도 나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통상과 안보 분리 얘기가 나온 것 같다.

‘안보와 통상의 논리’가 과연 다를까.

흔히 정치와 경제는 맞물려 돌아가는 ‘일종의 수레바퀴와 같은 존재’다. 정치 따로 경제 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릴 수밖에 없다. 실제 그렇다. 정권이 바뀌면 경제 전반의 정책과 목표가 달라진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있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돼야 정상이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경제정책의 기조 역시 바뀐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보호무역 기조로 돌아선 트럼프 행정부를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상이라는 경제적 분야와 안보라는 정치적 테마는 분리될 수 없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번에 철강에 대한 규제조치를 언급하면서 미국이 내건 명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월 16일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라 철강 수입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담긴 보고서와 조치 권고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제재 권고안에는 모든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대해 일률적으로 24%의 관세율을 추가로 부과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12개국에서 들여오는 철강 제품에 53%의 관세율을 부과하며, 모든 철강 제품에 대해 수입량 제한(수입할당제)을 적용해 2017년 물량의 63% 수준으로 규제하는 안이 담겨져 있다.

여기서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때의 안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운 ‘안보’를 다른 미국의 동맹국가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2월 20일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으로부터의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은 미국의 안전보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이번 보고서가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으로 미국의 철강산업 기반이 약화된다는 인식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해석 이외에 실질적 안보라는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내 철강 공급과잉이 문제라면 일본이나 독일, 그리고 대미 철강 수출 1위 국가인 캐나다 같은 국가들에 대해서도 제재가 이뤄져야 옳다. 캐나다는 대미 무역흑자가 미미하기에 이번 제재조치를 피해갈 수 있었다는 논리도 가능하지만 우리보다 몇 배나 되는 대미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는 일본이 철강 규제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세탁기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가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철강에 대한 규제를 발표한다는 것은 통상의 논리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안보’와 관련한 철강 수출 규제 국가로 명시한 이유는 아마도 한국을 주요 중국산 철강 우회 수출국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논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과 우리와의 관계를 주시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사드 문제부터 시작해 우리 정부의 외교적 행위가 미국 눈에는 중국 중시 정책으로 비칠지 모른다. 우리 정부가 중국을 그 정도로 중요시하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이 그렇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지금 북한 문제를 자신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라 생각하고 있고 중국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가깝다는 인상을 갖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우리를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미국은 우리에 대해 연일 통상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대가 통상과 안보를 엮어 접근하는데, 우리만 분리해서 대응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외교적 실익도 없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할 수 없을 터다. 우리가 상대를 우리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말은 달라질 수 있다. 상대는 안보와 통상을 엮어서 접근하려 하지만 우리가 이를 반대해 상대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고 우리의 의도대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일본의 아베가 ‘푸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미국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베가 그런 비아냥거림까지 감수하면서 미국에 매달린 이유는 자신들의 힘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이를 깨달은 아베 일본 총리는 골프장에서 넘어지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다니고,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일본의 ‘푸들외교’가 일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만 안보와 통상을 분리시켜 접근하겠다고 해도 외교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월 1일부터 10일까지 성인 미국인 10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1%가 북한을 미국의 최대 적국으로 꼽았다. 2년 전 같은 조사에서도 북한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최대 적국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응답자의 16%만이 북한을 최대 적국으로 꼽았다. 2년 동안에 거의 3배 넘는 미국인이 북한의 위협을 실체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의미다. 이런 여론조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난번 하와이에서의 경보 오작동 당시 미국인들이 보인 태도를 보면 미국인이 얼마나 북한을 위협적인 실체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경제 회생 못지않은 중요한 이슈로 북한 문제를 꼽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모든 외교 역량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우리 정부의 대미외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국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우리가 미국의 절대적 동맹국이라는 점을 미국이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부족하다면 더욱더 노력을 해야 한다. 어쩌면 미국의 통상압력은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달라는 미국식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미국이 북한의 대화 제의를 수락했지만 북한이 막판에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 이유가, 미국 태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북한이 알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미국이 자신들의 생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북한 문제 해법을 찾는 데 있어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투영될 수 있다. 4월 위기설이 그야말로 설(設)로 끝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정부가 이런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7호 (2018.02.28~2018.03.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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