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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동준의 한국은 지금] "집사야 결혼하는데.."…고개 떨군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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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주관하는 디딤돌대출 요건이 강화하면서 30세 이상 1인 가구의 대출 한도가 1억 5000만원으로 줄었다. 또 주택가격은 3억원, 면적은 60㎡(약 18평) 이하로 축소됐다.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한 지금, 결혼을 준비하던 30대 남성들은 ‘날벼락 맞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세계일보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대출 축소로 고민하는 남성들이 많다.


■ “집은 남자가 준비해야”

지난 설 연휴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발표를 계획한 35세 직장인 남성 A씨는 정부 발표 후 애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아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한탄했다.

여자친구에게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프러포즈한 그는 1인 가구 대출 요건이 강화하자 사정을 털어놓으며 이해를 바랐다. 하지만 여성은 “집 없는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며 “차갑게 뒤돌아섰다“

A씨는 “결혼을 위해 남들 다하는 여가나 문화생활도 멀리하고 퇴근 후 새벽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돈을 모았지만 당장 5000만원이나 줄어든 대출금을 마련할 여력은 없다”며 “대한민국에서 남자 흙수저로 태어난 죄”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 퇴임 후 소일거리와 내가 보내드리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부모님에게 손 벌릴 순 없다”며 “결혼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인생을 즐겨야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에게 ‘결혼 후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상품을 받으면 되지 않았겠나‘라고 묻자, A씨는 “동감하고 같은 생각이지만 여성 쪽에서는 집문서를 원하고, 설령 여성의 이해를 받더라도 부모가 반대했을 것”이라며 “집 없는 남성은 넘어야 할 힘든 산이 많다”는 말이 돌아왔다.

■ “집 없으면 결혼 시장에서 사람 취급 못 받아”

마지막 보루였던 형의 결혼으로 결혼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B씨. ‘40전까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한 39세 B씨는 최근 계획을 포기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맞선을 시작으로 단체미팅을 쫓아다닌 B씨는 “내 집 여부로 상대에 대한 평가가 단숨에 결정 난다”며 “집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첫 만남의 느낌이나 감정보다 집이 우선시 되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십 번 퇴짜 맞은 그는 순서를 바꿔 내 집 마련 후 도전장을 내려 했지만, 그 역시 갑작스러운 대출규제에 발목이 잡혀 “때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B씨는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집 장만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10년간 숨만 쉬고 돈을 모아도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언론에서는 여성들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드문 사례라 뉴스가 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대출을 받더라도 수도권 외곽에 있는 아파트 구매하려면 1억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며 “사람이 숨만 쉬고 살 수 없는데 (대출규제로) 숨조차 참아가며 생활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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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에 내걸린 주택거래시세. 전세가 9억원 정도다.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줄어든 대출금 마련에 1인 가구 고민이 깊다.


■ “요즘은 아들 둔 죄인”…사돈·며느리 눈치에 집 파는 부모들

한편 이러한 고민은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인천 모처에 사는 김여사는 지금껏 아끼고 고생해서 장만한 단독주택을 최근 부동산에 내놨다. 그러면서 보증금 500만원하는 원룸 월세를 구하고 있다.

집이 팔린다고 해도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 한 채 구하기 힘들지만, 결혼을 앞둔 두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주기 위해서다.

또 장남이 몇 년 전 집 문제로 파혼당했던 터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처음 만나 셋방살이했던 당시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굳혔다.

김여사는 “딸 둔 죄인이란 말과 시집살이는 우리 때(베이비붐 세대) 얘기지 지금은 아들 장가보내면서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들 둔 죄인이 된다”며 “며느리와 사돈 눈치에 손자 돌보고, 반찬 해다 주며 가끔 집 청소도 해야 명절 때 얼굴이나 볼 수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남의 집 귀한 딸 데려간다고 하지만 남자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며 “아끼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이 대물림 되는 거 같아 슬프다. 평생 장인·장모와 아내 눈치 보며 살아야 할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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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결혼을 앞둔 남성들의 부담은 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1인 가구 대출규제를 두고 “서민층 실수요자에게 혜택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혼 준비하는 남성=내 집 마련’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정작 실수요자인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모습이다.

또 혜택에서 제외되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러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인식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아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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