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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김현주의 일상 톡톡] '미투(me too)' 운동 확산…제왕처럼 군림하는 풍토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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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투(me too)' 운동이 법조계를 거쳐 문화예술계, 연예계 등으로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시 '괴물'을 통해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폭로했는데요. 'En 선생', '노털상 후보'라는 표현으로 고은 시인을 우회적으로 지목했지만 문단 내 성추행 실상의 일부만 드러난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연극계의 거물로 행세해온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씨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성폭력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피해자들이 성추행과 성폭력 피해를 추가로 폭로하면서 이씨를 고소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른 연극 연출가와 배우의 성추행 의혹이 폭로되고, 뮤지컬 음악감독의 성희롱 의혹이 제기되는 등 공연예술계 전반으로 파문이 확산하는 양상입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대부분 문화예술계의 원로이거나, 명망가로 대접받던 유력인사들이어서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곪은 상처가 뒤늦게 터졌다는 탄식과 함께 성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불거진 피해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 섣불리 짐작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타인의 성폭력 피해를 방관하거나 숨기려고 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피해자 본인이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가해자를 엄벌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으로 문단 내 성폭력 파문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연극계 거물 이윤택까지 상습 성추행을 시인하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각 분야에서 대표성을 지닌 원로, 거물급이기에 그동안 묻혀왔던 추행이 최근 거세진 '미투' 운동으로 한꺼번에 폭로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뿌리깊은 성폭력 행태를 범정부 차원의 기구를 만들어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와 관련부처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극계 피해자들의 고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이윤택 연출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된 내용 중 일부를 시인하고, 공개 사과하면서 연극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성폭행 고발에 관해서는 부인하면서 성관계가 강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후배 문인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고은 시인은 지난 18일 '고은 재단'을 통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자락의 주거 및 창작공간을 떠나겠다는 계획만을 짧게 밝혔다. 그러면서 수원 주민들의 퇴거 요구를 이유로 들었을 뿐, 관심이 쏠린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입장은 공개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묻혀왔던 성폭력, '미투' 운동으로 줄줄이 폭로~ing

최근 성범죄 피해 증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러 피해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혹에 휩싸인 이들의 범죄 혐의가 확인될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감독과 배우 조민기씨의 성범죄 의혹은 피해자들에 대해 가해자가 우월적 지위에 있었던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일종의 '권력형 갑(甲)질'인 것.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해당 기관이나 영역에서 '왕(王)',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우 등을 성폭행 내지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 감독은 공연을 비롯한 극단의 각종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대학생들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조씨는 해당 대학 연극학과 교수의 지위였다.

세계일보

피해자들의 증언과 달리 이 감독은 성폭행 의혹을 두고 강제성이 없는 성관계였다고 주장했고, 조씨는 성추행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차적으로 적용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처벌조항으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꼽힌다는 의견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형법상 강제추행이나 강간은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폭행이나 협박이 존재해야 성립하는 범죄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우월적 지위였다는 점이 인정되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성범죄 의혹, 사실이어도 2013년 6월 이후 사건만 처벌 가능?

다만 수사에서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중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피해자가 고소 등 처벌 의사를 표시해야만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 조항은 2013년 6월 폐지됐다. 이 조항이 폐지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은 '행위시 법'을 적용하는 형법의 기본원칙에 따라 여전히 친고죄의 적용을 받는다.

현재 기준 고소 기간(6개월)이 한참 지나버린 상태라 더는 고소할 수 없다. 이 감독과 조씨를 둘러싼 성범죄 의혹들은 사실관계가 맞아도 2013년 6월 이후에 벌어진 일이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세계일보

후배 문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고은 시인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의 법 조항이 검토될 순 있지만, 현재까지 제기된 내용을 보면 대체로 의혹들이 친고죄 폐지 이전의 사안이어서 형사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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