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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엄마 환갑이다, 같이 해외여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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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 간 신체·문화적 차이 줄며 부모와 '환갑여행' 떠나는 자식들

잔치는 옛말, 비싼 선물은 구식… 함께 추억 쌓는 게 최고의 효도

1990년대까지는 환갑 맞은 부모를 위해 자식들이 잔치를 열었다. 2000년대 들어 잔치는 끝났다. 대신 해외로 '효도관광' 보내드리는 붐이 일었다. 요즘 최고의 환갑 선물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해외 '환갑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두 세대가 함께 가는 해외여행객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고, 이런 사람들을 겨냥한 여행 상품들도 쏟아지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해 어머니 김욱희씨 환갑을 기념해 4박 5일 ‘환갑 여행’을 떠난 심은정씨 가족이 태국 파타야 황금불상 벽화 앞에서 ‘내가 욱희’ ‘욱희 남편’ ‘욱희 딸1’ ‘욱희 사위’ 같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심은정씨 제공


부산에 사는 직장인 심은정(31)씨는 지난해 4월 어머니 김욱희씨 환갑을 기념해 태국으로 4박 5일 가족여행을 떠났다. 가족들은 '나는 욱희', '욱희 남편', '욱희 아들', '욱희 딸'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 남매와 사위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이었다. 여행 비용은 세 남매가 석 달 동안 '환갑 계'를 해서 모았다. 심씨는 "환갑잔치를 열어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직 정정하신데 사람들 불러모아 모임을 여는 게 어색해서 논의 끝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부모님이 여행 때 찍은 사진을 아직도 꺼내 보시며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시는 걸 보고 뿌듯했다"고 했다.

친지들을 모아 좋은 음식을 대접하거나 비싼 선물을 드리는 효심(孝心)은 이제 구식이다. 부모 세대 역시 자녀들과 '환갑여행' 떠나는 걸 선호한다. 지난해 가을 환갑을 맞은 아버지와 함께 중국 황산으로 여행을 다녀온 은행원 박종안(28)씨는 "아버지 소원이 영화 '와호장룡'에 나왔던 황산을 가보는 것이어서 중국으로 3박 4일 여행을 함께 갔다"며 "걷는 코스가 많아 아버지가 힘들어하실까 걱정했는데, 등산을 즐기셔서 그런지 나보다 오히려 더 잘 돌아다니시더라"고 했다.

성인 자녀가 부모님 여행 비용을 대주는 '효도관광'은 과거에도 많았지만, 이처럼 성인 자녀와 늙은 부모가 함께 여행을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행사 하나투어에 따르면 성인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해외로 떠난 여행객의 수는 2012년 약 14만3000명에서 2017년 약 27만4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조일상 하나투어 팀장은 "4~5년 전부터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가는 성인 남녀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 가는 여행이나 여성 모임에서 가는 여행보다 그 수가 많아졌다"며 "20~30대 자녀와 50~60대 부모가 여행지에서 즐기는 요소가 크게 다르지 않아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여행사들은 앞다퉈 '환갑여행 패키지'나 '모녀여행 패키지'와 같이 부모와 성인 자녀 동반 여행 상품을 쏟아낸다. 인터넷 의류 쇼핑몰에서는 가족여행용 티셔츠 인기가 뜨겁다. '우리는 가족여행 중'이라든가 '나는 엄마' '나는 둘째 딸' '아들 아니라 사위입니다' 등의 문구가 새겨진 옷을 각각 입고 가족애를 자랑하는 것이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가족여행 티셔츠' 상품만 380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에너지 넘치는 중장년층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과거에는 환갑쯤 되면 자식과 신체적·문화적 간극이 커 함께 여행하는 게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요즘 50~60대는 20~30대 자녀와 체력이나 취향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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