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평화협력원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대북 특사보다 대미 특사를 먼저 파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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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통일부 차관을, 2002~2004년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과 현재의 여건을 비교한다면.
-2000년은 미국이 한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그걸 뚫고 나가는 회담은 아니었다. 북한의 도발로 분위기가 좀 나빠지긴 했지만 당시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햇볕정책을 100% 지지한다. 운전대에 앉아라’라는 얘기까지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의 등에 업혀 북·미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런 김 위원장의 의중을 알고 미국에 특사를 보내 북·미 관계를 연결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도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한국이 다리를 놔 줘야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미국이 남북 관계를 허락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올 들어 북한이 왜 한국과 대화에 나섰다고 보는지.
-유엔 대북제재만 10개가 돌아가고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대북 독자제재 중이다. 수년간 지속되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워싱턴 타격이 가능한) 사거리 1만 3000㎞짜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지를 담은) 신년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미국이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할 힘(핵무력)을 갖춘 뒤 대화 국면을 열어 나가자는 식으로 판단한 것 같다. 서울(남북 대화)을 지나 결국 워싱턴(북·미 대화)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계산됐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김 특사의 방북 초청에 ‘여건’이 조성된 뒤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 또는 북·미 수교까지 가고 싶을 것이다. 이런 의지는 과거 정상회담 때보다 강해졌다고 봐야 한다. 특히 미국에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다음 핵비확산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수교를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즉 비핵화를 전제하면 북한은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해야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미국에 한 발만 물러서라는 의견이 나온다. 핵동결 정도로 회담을 일단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끌어내자는 것이다.
▶대북 특사를 보내 우선 북한의 의중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대북 특사보다 대미 특사가 먼저다. 친서 내용이 일부만 공개됐지만, 문 대통령과 김 특사가 만난 뒤 1시간 30분이나 지체한 뒤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것을 보면 분명 골치 아픈 얘기가 많다. 아마도 미국과 관련된 얘기일 것이다. 결국 북측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유도해 낸 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 북한이 속도전을 벌인다고 우리도 따를 필요는 없다. 한국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대한 실천전략 및 전체 그림을 그려 놓고 미국부터 만나야 한다.
▶대북 특사의 조건은.
-우선 북한의 화법에 익숙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부사나 형용사 하나에 문맥의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북한 문법이다. 그런 면에서 공개 특사라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비공개 특사라면 서훈 국정원장이 적임자다. 사실 특사는 남북 관계가 틀어졌을 때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관급회담(1월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먼저 열렸고, 신뢰 구축을 통해 조 장관이 방북하면 공식 회담과 비공개 면담을 겸할 수 있다.
▶북·미 대화 외에 6자회담이나 4자회담에서 해법을 찾는 시각도 있다.
-어차피 기본 판은 미국과 북한이 짜야 한다. 미국이 수교나 평화협정에 대해 입장을 세워 북한에 확실하게 전망을 준 뒤에야 경제 지원이나 북·미 간 합의 사항을 이행해 나가는 것을 주변 4국(한·중·일·러)이 보장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북핵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리고 냉전구조 해체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맞바꾸는 것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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