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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59] 평창과 닭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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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평창 겨울 올림픽의 최고 승자는 누구일까? 남자 빙속 5000m와 스노보드에서 각각 개인 통산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스벤 크라머르와 숀 화이트일까? 압도적인 실력으로 스켈레톤을 석권한 윤성빈 선수일까? 아니, 진짜 승자는 닭고기란다. 평창올림픽을 취재 중인 한 뉴질랜드 기자는 한국인들이 김치·삼겹살·족발과 더불어 닭고기를 거의 주식(主食)처럼 많이 먹으며, 외국 관광객들도 무척 좋아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KFC는 ‘켄터키(Kentucky) 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한국(Korean) 프라이드 치킨’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려서 먹던 닭고기는 늘 백숙이었다. 어른들은 보양식이라며 좋아했지만 인삼·대추·황기 등을 넣고 푹푹 끓이는 냄새부터가 영 아니었다. 게다가 닭 목을 비틀어 죽이는 장면까지 목격하고 나면 입에 대기조차 끔찍했다. 그랬던 내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야말로 사흘이 멀다 하고 닭고기를 먹었다. 언제부턴가 닭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누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가 되었다.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2만4000여 개에다 동네 치킨점까지 합하면 족히 4만여 개가 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닭고기를 좋아하게 된 걸까? 평생 열대를 돌아다닌 나는 본의 아니게 다양한 동물 고기를 먹어봤다. 내가 특별히 엽기적인 식성을 지녀서 시식해본 것은 아니다. 남미에서 건너와 우리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대형 설치류 뉴트리아보다 7~8배나 더 무거운 카피바라(capybara)와 그보다는 훨씬 날씬한 아구티(agouti) 그리고 몸길이가 2m나 되는 대형 도마뱀 이구아나(iguana) 등 내가 먹어본 거의 모든 동물 고기는 닭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감촉이나 맛으로 보면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별나다. 우리가 어쩌다 그런 고기에 먼저 익숙해진 것일까를 물어야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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