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9 (월)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시민 위한 헌법, 계속 토론돼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회 변화 담는 일관성 있어야…기본권·선거제도 입법도 포함

공론·합의 전제돼야 ‘진짜 개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난 세대가 다음 세대를 구속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진 헌법이 영원할 수는 없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이 말은 헌법이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헌법은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규율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만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독일은 1949년 기본법 제정 이후 지난해까지 62회 헌법조문을 고쳤다. 미국의 개헌은 1789년 이후 18회에 불과하지만 연방대법원 판례로 헌법의 내용을 무수히 바꿔왔다.

헌법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법기관의 해석에 의한 것으로, ‘헌법 변동’이나 ‘헌법 변천’으로 불린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헌법제정자의 의도에 따라 해석하는 것에서 결별한다”면서 사실상 새로운 헌법 규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을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의회 과반 동의는 헌법재판소장뿐이다.

다른 하나는 헌법조문을 직접 수정하는 것, ‘헌법 개정’이다. 현행 헌법은 제128~130조에서 개헌절차를 정했다. 국회나 대통령이 발의하고, 공고 절차를 거쳐 국민투표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개헌안이 준비되는 과정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안 이전의 단계, 즉 헌법 개정안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개헌이 한국 사회의 화두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지난 30년 동안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변화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헌법 운용으로 해결될 일인지,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일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헌법 운용의 문제라면 운용 주체가 문제인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인지 논의해야 한다.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 헌법의 진정한 사회통합 기능은 이 단계에서 구현된다. 특정 정파의 반대로 개헌이 불가능하므로 헌법 얘기는 무용하다는 발상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시민정치를 말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대통령 임기나 국회·대통령 관계 등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헌재가 헌법조문을 새롭게 해석해 판례를 바꾸는 것, 국회가 기본권과 선거제도를 입법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개헌이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충분한 토론과 폭넓은 합의다. 헌법은 계속 토론돼야 한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헌법 토론. 그것이 우리 삶을 바꾸는 진짜 개헌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