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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평창, 잔치는 끝났다” 북핵위기 재연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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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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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략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을 올림픽 대표단 일원으로 보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보다 축소한 듯한 인상을 주면서 ICBM이 등장하는 열병식을 강행했다. 동시에 특사로 방한한 김여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남북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지금 북한은 평화 운운하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ICBM은 등장시키면서 규모는 축소하는 북한의 전략은 다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미국에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줌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 여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만들어 제재 국면에 균열이 생기게 하겠다는 의도다. 한마디로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어줄 가능성은 없으니 당장을 위해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속셈이다.

지금 현재 북한은 엄청난 대북제재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아베 총리와 만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이른 시일 내에 전례 없이 가장 혹독하고 강력한 경제적 대북제재를 발표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 북한을 고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 입장에서는 제재의 끝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북한은 어떻게 하면 제재 대열에 구멍을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대한민국 여론을 자신들에게 호의적으로 만들 필요성을 절감했을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의도는 올림픽 ‘참관’이라는 명목으로 온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면모를 봐도 알 수 있다. 대표단 단장을 맡은 김영남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위 북한의 명목상 국가원수다. 오랜 기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외국 경험이 풍부하다. 그래서 외국에서 세련된 행동을 보이며 북한의 이미지를 높이는 쇼를 수행하는 데는 더없이 훌륭한 연기자다. 여기서 연기자라고 하는 이유는 김영남이 실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남의 약점을 보완해줄 인물이 김여정이다. 얼굴마담으로서 역할 연기를 충실히 할 김영남과 실권을 가진 김여정이 각각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인적 조합인 셈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노리고 있는 것은 올림픽에서 자신들에게 이목을 집중시켜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에 이미지를 제고시킴과 동시에,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높여 한반도 위기가 남북 화해로 가능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대한민국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을 흔들려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파견이라고 주장하지만, 김여정이 미국의 인권 제재 대상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고 열병식에서 ICBM까지 등장한 마당이기에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측 대표로 우리나라에 온 펜스 부통령은 처음부터 방한 이유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한 언급을 보면 이런 펜스 부통령의 말이 허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입장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에 ‘한반도 위기가 남북 화해로 가능하다는 착각’을 일으키려 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지금 한반도 위기가 남북관계 개선으로 극복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데서 비롯됐다. 자칫 섣부른 남북관계 발전 노력은 오히려 국제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 되고, 만일 북한이 제재 국면 돌파용으로 우리를 이용하려 한다면 한반도 위기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한미동맹 같은 대외 관계만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미국이 우리를 곱게 보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때문에 우리는 많은 대북제재의 예외를 국제사회와 미국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갈마비행장에 전세기를 띄울 때도 미국과 진통이 있었다. 미국이 단독으로 취한 대북제재 위반인지라, 미국 양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에 들어갔다가 자칫 우리 국적기가 비행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미국에 예외를 인정해달라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 갈마비행장 출발 2시간 전에 승낙을 받아냈다. 이후 만경봉호 입항 문제가 또 등장했다. 만경봉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5·24 조치 위반이다. 5·24 조치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우리나라 단독의 대북제재 조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결정에 의해 이를 예외로 인정할 수 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2017년 12월 30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017년 11월 29일 5쪽 분량의 이행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어뢰 폭침 사건에 대응해 2010년 5·24 조치를 취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 영해에서 북한 선박 운항을 포함해 북한 선박과의 ‘선박 간 이전’, 남북 교역 등이 금지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5·24 조치는 국제적 대북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만경봉호 입항을 허가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국제사회에 대북제재의 일환이라고 보고한 조치의 예외를 인정한 셈이 된다.

그뿐 아니다. 만경봉호는 우리에게 배에 쓸 기름을 공급해달라 하고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다. 만경봉호 정도 규모의 배에 기름을 가득 실으면 한 달 정도는 운항할 수 있다. 배의 기름을 달라는 것을 보면,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제재 대열을 흩어뜨리려고 단단히 작정한 것 같다.

대북제재를 약화시키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고위급 대표단 일원에 최휘를 포함시킨 것이다. 최휘는 유엔이 지정한 제재 대상 인물이다. 그럼에도 굳이 북한이 최휘를 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우리를 통해 대북제재를 약화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를 또 한 번 드러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것은 올림픽을 위한 조치였음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가 걱정인 이유다. 대북제재의 각종 예외를 인정했음에도 한반도 위기가 증폭될 경우, 우리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거나 아니면 외교적 입지가 상당히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중 가장 걱정인 점은 바로 한미동맹과 한미일의 공조체제의 균열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말하지만, 벌써부터 미국은 우리 태도에 대해 불만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우리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느냐 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작금의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미국에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동북아나 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은 근대 이후 통제 불능 국가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과거 소련이 있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위협했지만, 소련과 미국은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의 미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한은 다르다.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그때 가서 잘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난 이후 북한이 바뀔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북한 행태로 볼 때, 북한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확률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 어쩌면 미국의 신뢰를 부분적으로 잃고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리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3중고를 겪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평창, 잔치는 끝났다.”

이후 과연 어떤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6호 (2018.02.21~2018.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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