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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70)]때로는 기대하지 않아야 좋다-스타라스부르 프티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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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로맨틱가도의 뷔르츠부르크를 마지막으로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넘어간다. 경계선 하나 없는 국경이지만, 나무와 들판의 색이 변한다. 독일에 비해 프랑스의 산림은 엷고 부드럽다. 접경 지대인 스트라스부르는 현재 프랑스 영토이지만 세 가지 언어로 표기된다. 프랑스어로는 Strasbourg, 알자스어로는 Strossburi, 독일어로는 Straßburg다.

이곳 알자스 사람들은 때로는 프랑스인이었고 때로는 독일인이었다. 스트라스부르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 영토로 귀속되었지만, 이중적인 문화가 여전히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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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골 가옥이 잘 보존된 스트라스부르에는 라인강과 론강이 합류하는데, 그곳에 프티 프랑스가 있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목골 가옥이 운하에 반사되는 프티 프랑스는 한 폭의 수채화와 같다. 그러나 프티 프랑스라는 이름의 유래는 비극에서 기원한다. 16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당시 불치병인 매독에 걸렸는데, 알자스 사람들은 이들을 격리 치료했다. 그곳을 작은 프랑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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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은 선물
가끔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 밖의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더 기쁘기 마련인데,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랭스가 그렇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우리는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랭스에 잠시 머물렀다. 우리는 지난 세 달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즐거운 여정이지만 몸은 꽤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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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랭스에서는 처음으로 하루를 쉬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여행자가 어떻게 걸음을 멈출 수 있을까. 몸은 무거워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자 그런 감정이 더 생긴다. 우리는 특별한 사전 정보 없이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 무척 아름답고 인상적인 성당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형제처럼 느껴진다. 랭스 대성당에서 무형의 선물이지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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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린다. 음악 소리는 발걸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한다. 성당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소리가 증폭된다. 여러 성당을 다녔지만, 이곳처럼 선명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한참을 서서 귀를 기울인다.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휴대폰으로 녹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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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의자도 조금 달랐다. 벤치 형태가 아닌 한사람씩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많은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높은 의자와 낮은 의자가 함께 있어 나와 딸아이는 마주보며 눈높이를 맞춰본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경험한다. 창문을 통해 햇볕이 쏟아지며 의자에 온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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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글라스의 느낌도 색다르다.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무척 따뜻하고 정감이 간다. 자꾸만 보게 하는 끌림이 있다. 랭스의 노트르담 성당은 역사적으로 무척 유서 깊다. 왕의 대관식 장소이다. 프랑크 왕 클로비스가 496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그 이후 대부분의 프랑스 왕이 랭스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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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도 랭스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다. 15세기 초 영국과의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는 위기에 처한다. 이때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천사장 미카엘의 계시를 받게 되고 전투에 참가해 연거푸 승전한다. 그녀는 역대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치러진 랭스 지역까지 되찾은 후, 샤를 왕세자의 즉위를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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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샤를 7세는 잔다르크에 의해 랭스에서 왕이 되었지만, 대관식을 마치자마자 돌변한다. 그녀의 위상이 왕권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전열을 정비한 영국이 반격에 나서자 잔다르크는 다시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왕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콩피에뉴 전투에서 패한 잔다르크는 영국군의 포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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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프랑스를 상대로 그녀의 몸값을 흥정했는데, 샤를 7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잔다르크는 마녀라는 오명을 쓰고 19세의 나이에 루앙 광장 화형대에 올랐다. 샤를 7세는 1473년 백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그녀의 마녀 혐의를 벗겨준다.

그리고 잔다르크를 이단으로 몰아세우며 죽음으로 내몬 교회는 450년이 지난 20세기 초에 그녀를 성녀로 인정하게 된다. 랭스의 노르트담 성당에는 양손에 칼을 지탱하며 지긋하게 눈을 감고 있는 잔다르크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누명을 벗고 성녀로 시성되었지만, 당시의 고통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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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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