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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68)]남편은 개구쟁이-오스트리아 티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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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티롤의 숙소 수영장에서


호텔의 경우, 방 안에 조리시설이 있지 않다. 대개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티롤에서 머문 호텔에는 간단한 조리시설이 방안에 갖춰져 있다. 2구짜리 전기 레인지와 작은 싱크대가 화장실 옆에 있다. 오래된 호텔이라서 그런지 조금 특이한 구조다.

남편은 자기 전에 맥주를 한 두 캔 마시는데, 소시지를 안주로 즐겨 먹는다. 티롤의 숙소에서는 조리대 근처에서 뭔가 준비하길래, 여느 때처럼 소시지를 뜨거운 물에 데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굽는 냄새가 나며 연기가 스물 스물 방안에 퍼지는 게 아닌가. 프라이팬이 없어 냄비에다 한 개 남은 소시지를 굽고 있었던거다.

그런데 올리브유를 적게 부은데다가 냄비에 소시지가 들러붙으며 탄내가 진동을 한다. “몸에도 안좋게 왜 구워 먹냐”고 한 소리 하는데, 갑자기 천장에 붙어있던 경보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한다. “삐~ 삐~ 삐~” 연기가 빠지지 않아 화재경보기가 울린거다.

평소에는 느릿느릿한 남편이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움직인다. 마치 동영상 화면을 4배속 플레이로 돌리는 것처럼. 남편은 순식간에 창문을 열고 방문도 연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냄비는 화장실에 넣고 문을 닫는다. 그러나 경보기가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어떡하지. 호텔 직원은 금세 방으로 들이닥칠 것 같고, 투숙객들은 대피하느라 소동이 벌어질거 같다. 게다가 소방차가 출동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일이 커지는데... 만약 소방관이 오면 뭐라고 하지? 소시지 하나를 구운거 뿐이라고 해야 하나.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히 방 천장에 스프링쿨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 물벼락을 맞지는 않을거 같다.

그런데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연기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분주하던 남편이 갑자기 내게 타월을 내민다. ‘뭐지, 백기라도 흔들라는거야?’ 내가 머뭇거리자 남편은 곧장 타월을 손에 쥐고 침대위로 올라간다. 그러더니 화재경보기를 향해 부채질을 하기 시작한다. ‘펄럭~ 펄럭~’

어라, 그런데 효과가 있다. 투숙객을 다 깨울 것처럼 시끄럽게 울던 경보기의 알람이 잠시 후 멈춘다. ‘휴, 다행이다!’ 이제 남은 걱정은 언제 방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외부 인사들.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동태를 살피니 아무런 미동이 없다. 안전 불감증인가. 그 보다는 ‘이런 일이 자주 있구나~’로 결론을 내려본다.

이어 “앞으로 소시지는 굽지 않고 데쳐 먹겠다”라고 약속하는 남편을 향해 나는 “몸에도 안좋은 소시지 먹지 마라”고 못을 박았다. 딸아이는 간밤에 벌어진 이 야단법석이 뭐가 재미있는지 옆에서 까르르 웃는다.

남편은 그런 딸아이에게 “그래도 아빠가 정말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았니?”라며 나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아빠가 창문을 열테니 너는 방문을 열어라”며 서로 손발을 맞추자고 모의한다. 남편은 어떨 때 보면 정말 못 말리는 개구쟁이 같다.

장담하건데, 소시지도 분명 또 구워 먹을거다. ‘그래, 또다시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그때는 타월을 힘차게 펄럭여 줄께요’

스포츠서울

※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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