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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빈 체제에서 프랑스를 구하다…와인에 얽힌 역사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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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왕실 와인파티가 혁명 씨앗 품어

나폴레옹 패전 뒤 고급와인 외교

최고기록은 기원전 15세기 등장

중동서 유럽 전파…알콜음료의 왕

미국 금주법 시대에도 밀주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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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한 테이블에 놓인 화이트 와인잔에 건너편 파르테논 신전이 비치고 있다. 아테네/박미향 기자 mh@hani.co.kr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기독교 성서 ‘창세기’ 9장 20~21절에 나오는 이 구절은 와인에 대한 문헌상의 최초 기록(기원전 15세기 추정)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 중동 지방 언어의 시조 격인 히타이트어에도 와인이 등장하는데, 우이안(uiian) 또는 위아나스(uianas)라고 불렸다. 이게 서쪽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고대 그리스어로는 오이노스(woinos), 라틴어로는 비눔(vinum)이 되었다. 이 단어는 다시 유럽 각 지역에서 비노(vino, 이탈리아), 뱅(vin, 프랑스), 바인(Wein 독일어), 와인(wine, 영어) 등의 파생어를 낳았다. 영어에서도 포도나무는 바인(vine)이다.

와인은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대로 즐기는 대중 음료가 됐다. 와인을 마시기 앞서 뭐라도 한마디 아는 척 해야 체면이 서는 시대는 지나갔다. 비교적 저렴한 수입 와인도 많은데다, 요즘엔 명절 차례상에 와인을 올리는 풍경도 어색하지 않은 추세다. 이번 설 연휴에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많을 것이다.

‘신의 물방울’로 칭송받는 와인은 부드러운 감성과 고상한 지성을 두루 갖춘 술로 통한다. 와인만큼 그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며 관련 용어가 복잡한 술도 없다. 꼭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마셔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가 깊은만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많다. 와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만 기억해둬도 와인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한층 더 그윽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 국내에도 관련 책과 자료들이 제법 나와 있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등 와인 전문가 7명이 함께 쓴 신간 <와인 에피소드>도 그 중 하나다. 와인의 유래에서부터 종류와 제조법, 와인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 와인을 즐기는 방법, 와인과 관련된 유머들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망라한 ‘와인 미니 백과’라 할 만하다. 그 중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내용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소개해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모두 빚어 마셨다고 한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지중해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충적평야 지대)’에선 와인이 지하에 밀폐된 상태로 발견돼, 당시 사람들이 이미 공기와 온도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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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이 와인을 숙성시키고 보관한 토기인 암포라. 지중해 전역에서 유물이 발견된다. 아네테/박미향 기자


오늘날 와인 하면 흔히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유럽에서 와인의 원조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중동과 가까운 지중해 서부지역이었다. 지중해 연안 전 지역에선 고대 그리스의 와인 항아리 유물들이 발견된다. 오늘날 이탈리아 남부 지역은 기원전 6세기 이전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오에노트리아(Oenotria, 와인의 땅)라고 부를만큼 포도가 잘 자랐고, 와인 문화도 풍성했다. 그리스인들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에선 바쿠스)를 찬미하며 와인에 흠뻑 취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즐겼다.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와인만큼 뛰어나거나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신들의 와인’ 맛보며 ‘송중기 와인’을 찾다

애주가들의 와인 사랑은 금주법과 무거운 처벌로도 막을 수 없었다. 미국이 수정헌법으로 술을 금지한 1920년대, 이른바 금주법 시대는 대표적 사례다. “금주법 시행 전에는 캘리포니아산 포도가 연간 1만3500대의 기차 화물칸에 실려 동부로 갔으나, 금주법 기간인 1926년에는 그 물량이 5배나 늘었다고 한다. 화물칸에 실린 수많은 통에는 이렇게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경고! 이 통 속에는 발효되지 않는 포도주스가 들어있습니다. 이스트를 넣고 따뜻한 곳에 두지 마시오. 그러면 포도주스가 발효되어 와인이 됩니다.” 와인 빚는 방법이 고스란히 적힌 셈이다. 덕분에 금주법 기간 중 미국인 천 명 중 한 명은 와인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에드워드 스타인버그, <산로렌조의 포도와 위대한 와인의 탄생> 재인용)

와인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서 유럽의 동맹국들에게 패배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을 엘바섬 감옥에 가둬놓은 승전국들은 유럽의 정치 상황을 프랑스 대혁명(1789년) 이전으로 되돌려놓으려 오스트리아에서 빈 회의(1814~1815년)를 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총리의 이름을 따 메테르니히 체제로도 불리는 ‘빈 체제’를 낳으면서 전후 세력균형을 재편한 그 회의다. 그런데 승전국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까지 거들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탓에 정작 중요한 사항은 뒤에서 몇몇 나라의 비밀회의로 결정됐다. 참가국 전체가 모인 회의는 한 번도 없었던 데다, 외교 대표들도 공식 회의는 안하고 매일 저녁 메테르니히가 마련한 연회와 무도회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 “회의는 춤춘다, 하지만 진전은 없다"고 비꼬는 표현이 유래됐다. 반면 패전국 프랑스의 협상 대표는 최고급 와인 ‘오브리옹’과 좋은 요리로 회의를 주재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나폴레옹과 혁명으로 돌리고 국익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빈 회의 이후 오브리옹은 연회에서 빠져선 안될 술이란 입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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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왕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 당시 프랑스 왕실에선 헝가리산 화이트와인 토카이가 최고 인기를 끌었는데, 문학과 예술을 즐긴 마담 퐁파두르가 주도한 사교 모임의 살롱에는 급진적인 계몽사상가들도 드나들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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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스 샴페인 또한 고급 와인 대열에서 빠지면 서운하다. 샴페인은 프랑스 북부 상파뉴 지역을 부르는 영어식 발음에서 유래했다. 상파뉴는 프랑스의 포도 재배 북방한계점이어서, 17세기말까지도 신맛이 강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별 특징이 없는 레드 와인을 생산했다. 그런데 1700년대부터 거품이 나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면서 ‘서늘한 대륙성 기후’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꿨으며, 와인 명산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신맛의 와인에 탄산가스가 만드는 거품이 특유의 신선한 맛을 내고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게 됐다는 것. 여기에는 샴페인의 고압을 견디면서 밀봉도 가능한 유리병 제조 기술의 향상, 고농도 알콜을 견디는 이스트와 이스트 찌꺼기 제거를 위한 냉동법 개발등 과학기술 발달이 한몫을 했다. 180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맛과 색깔을 내는 상품을 선뵈고 상류층을 주요 고객으로 강조하는 감각적 마케팅을 동원하면서, 대중들에게 상류층은 샴페인을 마신다는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이 신선한 술에서는 반짝이는 거품이, 우리 프랑스인들에게는 빛나는 이미지가 나온다”는 샴페인 예찬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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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르도 와인들이 테이블에 놓인 모습.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와인 생산량 세계 1,2위를 다툰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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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적인 명품 화이트 와인으로 꼽히는 헝가리의 ‘토카이’도 18세기 프랑스 왕실과 귀족 사회의 사교계에서 명사들의 혀를 사로잡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 루이 15세는 선왕이자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가 구축한 강력한 왕권에 힘입어 나랏일은 신하들에게 맡긴 채 애첩인 마담 퐁파두르에 푹 빠져 지냈다. 마담 퐁파두르는 문학과 예술을 즐겼는데, 그의 살롱에는 당대의 급진적 계몽사상가와 문학가들도 모여들었다. 이 무렵 프랑스 사교계에 은은하고 달콤한 화이트 와인 토카이가 등장했는데, 루이 14세는 토카이를 맛본 뒤 “이 와인은 왕들의 와인이며, 와인의 왕이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루이 15세가 토카이를 맛본 뒤 마담 퐁파두르에게 그렇게 속삭였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토카이 와인은 1700년대 초에 파리 사교계에 데뷔하면서 최고의 명품 와인으로 떠오른 셈이다. 프랑스 왕권의 황금 시절에 왕의 애첩이 권력의 심장부에서 벌인 지적 향연의 화려함 속에서 프랑스 혁명의 씨앗이 퍼져나간 것은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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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한 와인야드 내 와인 숙성 및 저장소에 오크통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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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포도 아닌 다른 과일로 담근 술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오늘날 포도 와인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알콜 음료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수 천 년 동안 여러 과일을 발효시켜 본 결과 포도로 만든 것이 색깔과 맛, 향이 가장 좋고 오래 유지됐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와인을 “과육을 으깼든 으깨지 않았든 상관 없이 포도 열매 또는 포도액(과즙)의 알코올 발효로만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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