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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44)]아빠는 사진에 없다-구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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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엄마가 딸아이 셋을 데리고 내가 앉아있는 광장의 벤치로 다가온다. 구엘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바로 타일 장식이 화려한 광장의 벤치다. 그곳에서는 바르셀로나 시내와 드넓게 펼쳐진 지중해가 내려다보인다. 벤치는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사진 찍기 명당이다. 동화 ‘헨델과 그레텔’의 과자 집을 모델로 지은 기념품 샵과 경비실, 그리고 시내전경과 바다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벤치에 앉아 전망을 내려다보았다. 아이 셋을 데리고 온 금발의 엄마. 그녀는 젖먹이로 보이는 아기를 품에 안고, 나머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아기는 캥거루처럼 엄마 가슴에 포근하게 안겨있고, 서너살로 보이는 두 아이는 흰색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다. 엄마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옆자리에서 지켜본다. 같이 찍고 싶을 만큼 아이들이 귀엽다. 흰 옷을 입고 있어 그런지 천사처럼 보인다. 딸이 셋이라 아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딸 셋이 끝이 아니었다.

아빠가 유모차를 끌며 대여섯살쯤 되는 아이 한 명을 더 데리고 나타났다. 딸만 네 명인 가족이다. 엄마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조금 늦게 등장한 아빠가 DSLR카메라를 들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많다보니 사진 찍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 중에 한 명이 자꾸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그것도 번갈아 가면서. ‘단란한 가족사진이 찍혀야 할텐데…’ 마음속으로 응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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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진에 아빠는 없다.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는 늘 프레임 밖에 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 “가족과 함께 찍어주겠다”고 했다. 금세 ‘OK’하며 좋아한다. 그런데 건네받은 카메라가 무겁고, 기능도 복잡하다. 설명은 들었는데,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렵다. 그래서 남편을 불렀다. “사진 좀 찍어드려요” 카메라를 잘 다루는 남편은 가로 앵글, 세로 앵글로 나눠 그 가족사진을 찍어준다. 풍경까지 넣어 몇 컷 더 찍는다. 그러자 딸부자 아빠가 우리가족의 사진도 찍어주고 싶다고 한다. 당연히 땡큐다. 덕분에 우리도 아빠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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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쉼터, 구엘공원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 공원은 동화 속 나라 같다. 정문에 서 있는 ‘과자의 집’은 알록달록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입장객을 맞는다. 경비실로 만들어 졌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과자의 집을 통과하면 형형색색의 타일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도마뱀이 입으로 물을 뿜고 있다. 사람들이 한 번씩 사진을 찍고 갈만큼 인기가 높다. 공사 중에 나온 돌덩어리로 만든 인공석굴과 도리스식으로 지어진 신전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흙바닥으로 되어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 광장을 테두리 치고 있는 벤치에 앉아보면 일반적인 벤치와 느낌이 다르다. 미관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깨진 타일이나 도기로 장식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살짝 기울어진 설계로 앉은 사람의 몸을 잡아준다. 또한 비가 내릴 경우, 그 경사를 통해 물이 자연스럽게 배수로 쪽으로 흘러내려간다. 가우디는 그 물이 정수과정을 통해 분수로 다시 나오게 했다. 벤치에 앉아보면 등 뒤로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지압 효과까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오래 앉아 있으면 약간 불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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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교외의 언덕에 위치한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인 구엘 백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고 원래 이 공원은 전원주택 단지를 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60호 정도를 지어 당시 스페인의 부유층에 분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인해 완공되지 못했고,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입해 공원으로 바꾸며 시민들의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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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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