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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왜냐면] 보건의료 빅데이터 논의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사람 / 안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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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선주 성균관대 초빙교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맞물려 최근 보건의료 빅데이터 논의가 뜨겁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단일 보험자 체제라서 의료데이터 수집이 용이하다.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이후, 전국민의 의료정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 등의 공공기관에 축적돼 있다. 비급여 항목을 제외한 전국민의 보건의료 데이터가 저장 대상이다. 전국민의 치료 현황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빅데이터임에 틀림없다. 보건의료 빅데이터에는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한 이유와 질병과 치료 내용, 처방받은 약들이 포함되어 있어 지역별 병상, 의료인력, 의료전달체계 등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인 배치 결정을 위한 핵심 자료원이 된다. 그런데 보건의료 빅데이터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퍼즐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환자다. 국민을 말한다. 환자들은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 제공자임에도 소외되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 진료를 목적으로 자신의 내원 정보를 제공해왔지만, 정작 체계적으로 정리된 형태의 의료정보 데이터는 제공받지 못했다.

물론 환자가 자신의 진료정보를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환자가 평생 동안 진료를 받는 병원이 그 편의에 따라 수십곳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의료기관에서의 정보연결이 단절되어 분리된 상태로 각기 존재한다. 환자가 요청하면 타 병원에서의 의료기록을 종이나 시디(CD) 형태로 받을 수는 있지만, 이는 표준을 기반으로 정렬된 정보가 아니라 병원 간의 자료를 합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진료정보 교류사업에 참여 중인 병원도 있지만, 현재는 전국 단위 서비스도 아닐뿐더러 확산 속도도 느리다.

몸이 불편한 국민에게 3분 안에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의사에게 다 전달하도록 부담을 주기보다는 국가적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환자는 정확한 의료정보를 의료진과 공유해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총체적인 정보를 제공받아 최상의 진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환자에게 의료데이터를 표준화된 디지털 형태로 제공하는 것을 주장한다. 미시적으로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연계성 있는 치료를 도모하고, 거시적으로는 국민의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빅데이터를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그 효용성이 돌아가야 옳다. 환자가 요청할 시, 진료받은 병원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편리한 형태로 제공할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한 공공기관은 현재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정보조회 서비스를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비표준화된 코드를 정비하고 시계열 데이터로 정리해 필요한 국민이 자신의 정보에 편리하게 접근하도록 디지털화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는 지난해부터 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두 가지 목표(모든 병원 업무에 표준을 적극 도입할 것, 환자가 자신의 건강에 관한 정보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할 것)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미국도 전국의 병원 데이터와 개인이 생성한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국제표준을 적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환자 정보를 전송하고, 환자는 다른 의료제공자에게 전송할 수 있는 버튼을 만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동안 신청자에 한해 제공하던 ‘주치의와 함께 볼 수 있는 개인용 건강기록’을 올해부터 전국민 자동 가입 형태로 전환하였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로도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도울 수 있다. 동일 연령대, 동일 지역, 성별, 질병 감수성을 지닌 그룹의 평균과 자신의 건강상태를 비교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구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진료지침 등을 한국인의 특성에 맞추는 지역화도 가능하다. 한국인 유전정보 분석에 따라 평균적인 진료가 아닌 맞춤형 질병 예방을 위한 각종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 인프라 구축이 용이해진다.

스마트폰, 컴퓨터로 자신의 은행 예금 내역 등 대부분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대에 통합적 의료정보만은 국민들의 손에 제공되지 않는다. 국민 개인의 건강관리, 환자의 연계성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료정보이다. 이러한 의료 빅데이터를 개개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시대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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