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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사찰 분위기 조성 말라" 현직판사, 법 내부망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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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 공정성, 영장주의 위반 등 우려

“더 예측 어렵고 두려움 강도도 더해”

“왜 이리 중심 잡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사법부 내 사찰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김명수 사법부’가 정기 인사를 마무리한 직후 나온 반응이다. 이를 계기로 판사들 사이에서 ‘김명수 체제’에 대한 반발 기류가 확산될 지 주목된다.

김태규(51ㆍ사법연수원 28기)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내에 사찰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기를 희망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이 지난 12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한 것과 관련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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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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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판사는 “종전의 1차나 2차 위원회와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종전 두 차례의 조사위원회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고 두려움의 강도도 더 한다”고 썼다.

그는 모두 6가지 항목으로 나눠 문제를 지적했다. 우선 조사단 구성에 있어서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실제 의중과는 무관하게 특정학회나 특정성향으로 분류되어 온 상황에서, 이번 인선에서 그러한 것들이 충분히 불식되었다고 볼 만한 노력의 흔적은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총 6명의 조사단원 중 김흥준(57ㆍ17기)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정재헌(50ㆍ29기)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이성복(58ㆍ16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등이 ‘우리법 또는 국제인권법 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두 곳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맡았던 단체다.

김 부장판사는 조사의 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관한 한계 역시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ㆍ경의 수사나 행정기관의 내부 징계절차도 이러한 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며 “저인망식 수사라고 비판하면서, 영장의 범위에 대해 그리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법관들의 엄중함이 이번에는 왜 이리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가”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새로 구성된 특별조사단에 조사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면서 의혹에 관한 철저한 조사 등을 지시했다.

김 부장판사는 영장주의 위반도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별조사단에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을 포함시킨 게 PC 강제개봉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는 “굳이 몇 분 안 되는 위원 중에 전산정보관리국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강제개봉을 천명하고 시작하는구나’는 예측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조사의 차수를 더한다고, 더 정당해지지는 않는다고 일갈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새로운 논란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법원의 심급이야 심급이 상향할수록 법관의 숫자도 늘어나고 법관의 경륜도 더 높아지는 등으로 그 실질적인 권위가 더해지고 여기에 법률에 의한 근거도 마련되어 있다”며 “그러나 1, 2, 3차 위원회는 그 위원의 숫자나 구성방식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고, 법률에 후위 차수의 조사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할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정처장님이 지휘하시고, 법관대표자회의 대표가 포함되어 있으며, 윤리감사관이 포함되어 있으니 좀 더 달리 봐야 될까. 그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저의 짧은 단견인 탓일지 의문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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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김 부장판사는 현재 논의 및 조사되어온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1년여 전에 인권법연구회에서 ‘인권’이 아닌 ‘사법개혁’을 주제로 하여 설문조사를 하고 이에 대하여 학술토론을 한다고 하기에 저는 그 순수성에 다소 의문을 가졌다”며 “그 후 언론에서 법원행정처가 이러한 학회의 활동을 억압하는 것으로 화제가 돼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놓이게 됐다”고 썼다.

이렇게 시작된 갈등은 1, 2차 조사위원회를 거치면서 블랙리스트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지게 되었고, 2차 조사위원회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에는 ‘원세훈’이라는 이슈에까지 대중의 관심이 확장됐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그는 “아주 발화점이 높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슈들로 갈등이 확장되어 가니 사법부에 대하여 무언가를 태우고 싶어 하는 대중은 지속적으로 훌륭한 연료를 공급받고 있었던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3차 위원회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3차 위원회에서 또 더 휘발성이 강한 이슈를 제공하여 대중의 에너지를 끌어낸다면 그즈음에는 법원 수뇌부가 희망하는 인사방향이나 제도변경 등을 이루어내는데 많은 장애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장판사는 “의혹만으로 이러한 큰 갈등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혹 제기만으로 진상규명에 나서는 식이라면, ‘양승태 체제’ 말고도 노무현 정부 시절 ‘이용훈 체제’ 당시를 배경으로 한 언론사의 여러 문제 제기도 같이 확인해야 맞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을 다 조사해서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겠는데, 그즈음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이것뿐이지 않을까 싶다. ‘법원은 못 믿겠고, 판사들은 나쁘다’”라고 썼다.

김 부장판사는 “조사단의 구성을 공정히 하시고 외부인 특히 정치적 성향이 강한 외부인의 참여를 꼭 배제시켜 달라”며 “조사대상은 최초 대상자로, 조사의 범위는 블랙리스트로 각각 한정하시고, 범죄혐의 등이 구체화되어 강제조사가 필요하다면 아예 수사의뢰를 하시기 바란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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