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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앵커브리핑] '2002년 가을…그리고 2018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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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2002년 가을 부산 해운대의 분위기는 뭐랄까…좀 들떠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해 열렸던 부산 아시안 게임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응원단이 남북한 팀을 응원하기 위해 내려와 해운대의 한 호텔에 잠시 머물렀지요.

그들의 외모부터 말품새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고, 언론도 이들에 대한 뉴스를 가득 담아냈습니다.

저는 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서 현지로 내려갔고, 개인적으로는 무척 오랜만에 가 본 해운대의 달라진 모습에 감탄했지만, 사실 그에 비할 수 없이 달라진 것은 바로 북한의 응원단으로 인해 바뀐 아시안 게임의 분위기였습니다.

이미 그때도 이것은 북한의 선전전이다… 미모의 응원단을 앞세워서 북한의 어두운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 등등의 경계의 목소리가 오갔지만, 설사 그것이 선전전이었다 해도 그런 정도의 선전전에 현혹될 만한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그저 우리는 그보다 두 해 전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실로 오랜만에 서로 간에 긴장을 덜 느끼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어제 북한의 응원단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런 뭐랄까…들뜬 분위기가 다시 재연되리라고 믿기에는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6년 동안의 변화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북은 정권이 세습되면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주장하고 있고, 남은 진영 간 갈등이 더 깊어져서 예술단이 내려와 정박한 항구에는 환영하는 사람들 대신 인공기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마중 아닌 마중을 나갔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부통령이 나서서 북을 압박하겠노라고 왔으니…

어찌 보면 동계 올림픽은 말만 스포츠일 뿐, 현실적으로는 온통 정치적 계산이 꿈틀거리는 판이 돼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것은 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을 정치로 물들인 이후부터 거의 모든 올림픽이 고민하고 겪어내야 했던 올림픽의 어두운 역사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며칠 전 저희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세라 머리 감독의 인터뷰를 소개해드렸는데…그는 이 혼돈의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림픽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뭐하러 화를 내고 슬퍼하고,

정부를 원망하며 힘을 낭비하겠습니까?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 세라 머리 남북 단일팀 감독"

'락커룸에서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단일팀을 둘러싼 논란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기류도 말 그대로 올림픽 정신 하나로 돌파해내고 있었습니다.

지금쯤은 힘을 모으고 있을 남북의 선수들 역시 감독을 닮아있지 않을까…

그래서 2002년 해운대의 뭐랄까…들떠 있던 분위기만큼은 아니어도 그저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남과 북을 긴장을 좀 풀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사치일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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