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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김현주의 일상 톡톡] 내정자 있는줄도 모르고 '들러리 면접' 본 지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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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공공기관 및 산하단체의 채용 업무를 점검한 결과, 기상천외한 수법의 채용비리가 횡횡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금융 공공기관은 당초 채용계획과 달리 채용 후보자의 추천 배수를 늘려 특정인을 뽑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기관은 서류전형에서 합격 배수를 조정해 특정인을 합격시킨 뒤 면접에서 심사위원 전원이 점수를 몰아줘 채용했습니다. 정부 산하 한 연구소는 고위 인사의 지시로 특정인을 사전에 내정하고 채용 절차는 형식적으로 운영했습니다. 내정자 외 다른 지원자들은 이런 치밀한 각본이 짜진 사실도 모른 채 들러리를 선 셈입니다.

한 지방 공공기관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직원을 권고사직시킨 뒤 그 자리에 새로운 직원을 뽑아 충원했습니다. 경쟁을 벌인 다른 지원자나 그들의 부모가 알면 통탄했을 부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 것입니다.

정부는 부정합격에 따른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으면 원칙적으로 구제한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부정합격자 퇴출이 원칙인 만큼 억울하게 탈락한 사실이 확인되면, 해당 지원자에게 뒤늦게라도 입사 기회를 주는 것은 마땅해 보입니다. 정부는 채용이 취소된 부정합격자의 경우 향후 5년간 공공기관 채용시험 응시자격을 박탈하기로 했고, 채용비리가 발생한 기관에 대해서도 경영평가 등급이나 성과급 지급률을 낮출 방침입니다.

'신(神)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있는 공공기관에 만연한 채용비리는 심각한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에게 상당한 좌절감을 안겨주는 행위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정부가 공공기관·단체 현직 사장과 임직원 가운데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390명을 즉시 해임·업무배제·퇴출하기로 했다.

채용비리로 인한 부정합격자는 최소 100명으로, 직접 기소되지 않아도 관련 비리에 연루된 자가 기소되면 즉시 업무배제 후 퇴출하는 한편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구제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등 18개 관계부처는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기타공직유관단체 채용비리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최종결과와 후속조치, 채용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11월 범정부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와 채용비리신고센터를 설치하고, 1190개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기타 공직유관단체 중 80% 가량인 946개 기관·단체에서 모두 4788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중앙공공기관 330곳 중 부정청탁·지시나 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33개 기관, 83건을 수사의뢰했다. 채용업무 처리과정 중 중대한 과실·착오 등 채용비리 개연성이 있는 66개 기관의 255건에 대해 징계·문책을 요구했다.

수사의뢰 대상 33개 기관은 한국수출입은행, 서울대병원, 한국원자력의학원, 정부법무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한식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국립중앙의료원, 근로복지공단, 항공안전기술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소상공인진흥공단, 한국벤처투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이다.

지방공공기관 824곳 중에는 서울디자인재단, 대구시설공단, 경기도 문화의 전당 26곳을 수사의뢰하고, 90곳에 대해 징계·문책을 요구했다.

공직유관단체 272곳 중에는 국제금융센터,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군인공제회,

대구와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충북테크노파크 등 9곳을 수사의뢰하고, 29곳에 대해 징계·문책을 요구했다.

◆부정합격자, 채용비리 연루자 등 기소 즉시 퇴출한다

정부는 채용비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 가운데 공공기관 등과 관련한 채용비리 의심사례 26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수사의뢰 또는 징계대상에 포함된 현직 중앙공공기관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모두 274명으로, 이중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된 중앙공공기관 현직 기관장 8명은 즉시 해임을 추진한다.

현직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시점은 1차 전수조사가 끝난 지난해 11월30일이다. 현재 해당 기관에서 즉시 해임 절차에 돌입한 기관장은 김상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과 정연석 항공안전기술원장 등이다. 정기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장은 지난달 10일 해임됐다. 이미 퇴직한 중앙공공기관장 중에는 14명이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중앙공공기관 임직원 189명과 지방공공기관 116명 이상,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77명은 이날부터 즉시 업무에서 배제하고 향후 검찰 기소시 퇴출한다.

세계일보

정부는 부정합격자는 검찰 수사결과 본인이 기소되면, 채용비리 연루자와 동일하게 기소 즉시 퇴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사의뢰 과정에서 중앙공공기관 부정합격자를 50명, 지방공공기관은 최소 21명, 공직유관단체는 29명 등 부정합격자를 모두 100명 가량으로 정부는 잠정 집계했다.

부정합격자는 본인이 기소되지 않아도 본인 채용과 관련한 자가 기소될 경우 즉시 업무배제 후 일정한 절차를 거쳐 퇴출한다.

◆채용비리 임직원 유죄 확정,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키로

정부는 수사결과 채용비리로 최종합격자가 뒤바뀐 경우 등 피해자가 특정될 경우 원칙적으로 구제를 추진하되 사안별로 피해자 특정성·구체성 등을 해당 공공기관이 판단해 피해자를 구제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서류전형 단계에서 피해를 본 경우 차기 채용시험에서 서류전형을 면제하는 식이다.

강원랜드 등 감사원 등으로부터 이미 감사나 조사를 받은 공공기관도 같은 원칙에 따라 관련 임직원과 부정합격자 업무배제와 퇴출을 추진한다.

재판 결과 기소된 임직원 유죄가 확정되면, 각 공공기관은 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

정부는 향후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채용비리 연루자에 대한 벌칙·제재조항을 강화한다.

세계일보

채용비리로 유죄판결이 난 임원이나 부정채용 청탁자는 명단 공개를 추진하고, 직원은 채용비리 관련 징계시효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물론, 부정합격자는 채용을 취소하고 향후 5년간 공공기관 채용시험 응시자격을 제한한다.

채용일정과 인원, 평가 기준, 전형별 합격배수 등 관련 공시를 늘려 채용 전 과정을 완전히 공개하고, 외부평가위원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각 예비합격자에게 순번을 주고, 불합격자 이의신청 절차를 마련하는 등 지원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절차도 마련키로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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