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법원 ‘요구형 뇌물’로 판단 … 박근혜, 재판서 불리해지나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뇌물 적극 요구 땐 가중처벌 가능

공여자보다 수수자 죄질 나쁘게 봐

뇌물 액수 줄어든 건 유리한 점

형량에 미칠 최종 영향 알 수 없어

중앙일보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이 5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장 전 차장은 이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돼 석방됐다. [변선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합의 13부(부장 정형식)는 이번 사건을 ‘정치권력의 요구형 뇌물’로 정의했다.

재판부는 “이른바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상대적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 부회장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적시했다.

이런 판단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형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적으로는 이 부회장이 줬다고 인정된 뇌물 액수가 1심 89억원 → 2심 36억원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판결과 보조를 맞춘다면 뇌물을 받은 쪽으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 역시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뇌물죄는 대향범(對向犯·범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이 반드시 필요한 범죄)으로, 공여액이 줄어들면 수수액도 반드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뇌물 수수액이 명확하게 줄어드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가 밝힌 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 경영진을 겁박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 가중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에 따르면 뇌물수수죄의 형량 가중 요소로 ‘적극적 요구’가 들어가 있다.

판사 출신 이모 변호사는 “요구형 뇌물 사건에선 수수자의 죄질을 더 안 좋게 본다. 준 사람은 뇌물을 주긴 했으나 요구해서 준 것이니 처벌이 약해지고, 받은 사람은 같은 금액을 받아도 형이 더 높아지게 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뇌물 액수가 중요한 것이지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 김모 변호사는 “뇌물죄는 직접적 피해자가 없지만 부패 범죄로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이 크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규정까지 둬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범죄다. ‘요구해서’ 받아내는 것이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받아내는 것이나 가벌성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박 전 대통령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가 이번 이 부회장 선고 내용과 별개의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사건에 대한 판단과 판결은 해당 재판부의 몫이고, 상급심 법원의 판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은 박 전 대통령 사건 재판부에 ‘증거 자료’가 되지만, 따라야 하는 ‘지침’은 아니다. 이번 재판부에서 인정하지 않은 ‘포괄적 현안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목표로 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고, 뇌물 액수를 달리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자신의 논리가 맞는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상급심 법원의 판결과 다른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 재판부가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를 1월 26일로 잡았다가 2월 13일로 연기한 것 역시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 결과를 참작해 판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근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에 선처 탄원서를 낸 이유가 이 부회장에 대한 선고가 20여 가지 혐의로 기소된 자신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인지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추가 구속이 결정된 후 지금까지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삼성에 승마 지원을 요구하거나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준 일이 없으니 그를 선처해 달라”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를 보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