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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Why] 지난달 열린 '풍수 재판'… 판사가 고택 옆에 집 못짓게 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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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國運風水]

지난 1월 하순 여러 신문이 법원 판결 하나를 보도했다. 건축주 박모씨는 2016년 10월 양주 매곡리 백수현 고택 부근에 높이 7.3m 2층 단독주택 10채를 짓게 해달라며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와의 일체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박씨의 신청을 불허했다. 이에 박씨는 2017년 2월 소송을 냈다. 그런데 법원은 풍수적 이유를 들어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화재청과 건축주 박씨 모두 풍수적 이유를 들어 소송과 반론을 하였기에 풍수 논쟁이 법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풍수가 판사의 판단 근거가 된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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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있는 백수현 고택. /김두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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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백수현 고택은 조선 말엽 민비(명성황후)가 자신의 은신처로 삼기 위해 서울의 고택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민비의 측근 김종원이 터를 물색하여 현재의 이 터를 잡게 되었다. 이곳이 은폐에 용이한 터였음을 방증하듯, 고택 우측 산(외백호) 너머에 25사단 신병교육대가 자리한다.

건축주와 문화재청 간 다툼의 핵심은 무엇일까? 건축주는 백수현 고택에서 100여m 떨어진 토지에 집들을 지어 분양·임대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된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 주택이나 공장 등 시설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문화재청 관련 규정에 "풍수지리 및 민속신앙 등 지역의 인문학적 특성과 관계된 문화재의 경우, 청룡·백호·안산·주산에 해당되는 지형 및 수계와 인접 마을 등을 일체적 관점에서 검토"할 것이란 조항이 있다. 앞에서 신문기사들이 언급한 '문화재와의 일체성 훼손'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일체성이란 '한 몸이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건축주가 주택을 짓고자 하는 곳은 몸으로 보자면 오른쪽 팔[右白虎]에 해당된다. 당연히 문화재청은 허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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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건축주 또한 두 가지 풍수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첫째, 만약 자신의 건축 행위로 인해 우백호를 훼손한다면 비보(裨補)풍수를 활용하여 그 훼손된 일부에 성토(盛土)를 하고 나무를 심으면 문제가 없다. 둘째, 백수현 고택 가까이에 다수의 민가·음식체험장·비닐하우스 등은 허용하면서도 이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짓겠다는 것을 금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건축주도 억울할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반론한다. 첫째, 백호를 훼손한 뒤에 다시 그곳 일부를 원상 복원하고자 한다면 애당초 훼손하지 않음만 못하다. 마치 상처를 내고 약을 발라주기보다는 애당초 상처를 내지 않으면 될 일이다. 둘째, 백수현 고택 부근에 다른 민가나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는 것도 물론 일정한 규제가 따른다. 그러나 그곳은 풍수적으로 생산 및 활동 공간에 해당된다. 반면 건축주가 건축하려는 곳은 일종의 울타리에 해당된다. 비유하자면, 경복궁 주변에 많은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지만(일정한 규제를 전제), 인왕산 능선에 집을 짓지 못하게 함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다툼을 두고 법원은 '문화재 주변 경관의 보존·유지라는 공익이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보다 크다'면서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 근교에 전원주택과 펜션들이 난립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들은 대개 풍수상 길지로 경관이 빼어나다. 전원주택이나 펜션들이 들어서기에 좋은 입지가 되기도 한다.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자 하는 개인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부동산업자들이다. 개인의 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익 또한 보호되어야 한다. 문화재 부근에 건축 행위를 하고자 할 때 '문화재와의 일체성' 규정도 살펴보시기를.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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