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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꽃맹(盲) 탈출... 봄꽃이름 10개 외우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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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지나갑니다. 많은 각오를 하게 되는 시기이건만 벌써부터 작심삼일을 경험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실패의 이유 중에는 금연이나 금주처럼 뭘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은 탓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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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바람꽃(경기도 광주시 무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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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에 걸쳐 지켜내야 하는 일은 이루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지 말고 뭘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작심해 보시죠. 시간적 제약이나 압박이 덜한 것일수록 실현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꽃맹(盲) 탈출’을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꽃 이름을 물어올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분이라든가, 그 꽃이 그 꽃 같다 싶은 분이라면 높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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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경기도 안산시 구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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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신이 꽃맹인지 아닌지 꽃맹 테스트부터 하는 것이 순서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장 눈 감고 ‘30초 안에 꽃 이름 열 개 대기’를 해보세요. 실패하면 꽃맹입니다. 30초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같다고요? 그럼 다시 생각할 시간까지 약간 준 뒤 ‘30초 안에 꽃 이름 열 개 대기’를 해보시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이건만 꽃맹에게 30초는 KTX보다 빨리 지나갈 겁니다. 실패자들이 많을 테니 진짜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을 약간 더 준 뒤 ‘30초 안에 꽃 이름 열 개 대기’를 해보세요. 성공인가요? 이번까지 실패했다면 꽃맹 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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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할미꽃(강원도 정선군 문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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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 번의 도전 안에 양심껏 꽃맹 아님으로 판정되신 분이라면 하나 더 해볼 게 있습니다. 개나리나 진달래 같은 목본 말고 민들레나 제비꽃 같은 초본의 이름만으로 다시 ‘30초 안에 초본 이름 열 개 대기’를 해보는 겁니다. 실패한다면 준꽃맹으로 자신의 지위를 강등하셔도 좋습니다.

사실 갑자기 꽃 이름 열 개를 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제한으로 인한 압박감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는 꽃이 없다면 30초가 아니라 100초를 준들 뭐하겠습니까? 다섯 개까지는 가능한데 그 다음부터가 입에서 맴돌고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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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깽이풀(대구시 달성군 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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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세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도 못해낸다면 누가 봐도 꽃맹입니다. 혹시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는 분이 있다면 꽃맹보다 치매를 의심해 볼 만합니다.

꽃맹 확정이라고 해서 너무 기 죽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꽃을 모르는 건 인터넷의 여러 백과사전들도 마찬가지니까요. 잘못된 정보를 잔뜩 실어놓고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고 계속 게시하고 있으니 오류투성이의 자료를 만든 사람이나 이용자나 별다를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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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경기도 화성시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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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야생화 강의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검색창에서 야생화를 검색해 보다 조금 놀랐습니다. 각종 자료에서 야생화에 대한 정의를 다 다르게 내리고 있었는데, 어느 것 하나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공신력 있는 단체나 기관에서 올린 방대한 자료들은 그 양만큼이나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개념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마구잡이식으로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야생화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 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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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풀(경기도 가평군 화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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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되겠지 싶다가도 맞지 않는 정의구나 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곤 해서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덕분에 야생화에 대해 몰랐던 것을 많이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지위는 전문가에서 준전문가로 하향 조정됐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야생화’는 ‘야화(野花)’ 또는 ‘들꽃’과 같은 용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건 들 외의 지역 즉, 산이나 바닷가에서 자라는 식물은 포함하지 않은 말이 됩니다. 그 모든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은 ‘야생’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야생화의 정의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야생에서’를 꼭 넣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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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경기도 가평군 화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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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의 정의에는 ‘저절로’라는 말이 곧잘 들어갑니다. 이것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라는 의미입니다. 바꿔 말하면 ‘인공적인 노력이 가해지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인공적인 노력이 가해지는 식물인 원예종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야생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야생화와 원예종 모두 관상 가치가 있는 식물에 국한되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인공적인 노력이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관상 가치가 있는 것은 야생화, 인공적인 노력이 가해져 관상 가치가 부각된 것은 원예종이라는 점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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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경기도 안성시 서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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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자라도 관상 가치가 없으면 야생화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관상 가치가 있고 없고의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최소한의 심미적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최소한의 심미적 가치가 있고 없고의 판단은 꽃이 피는 식물이냐 아니냐로 하면 됩니다. 야생화에는 이미 ‘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꽃이 피지 않는 양치식물 같은 것은 아무리 예뻐도 야생화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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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충청남도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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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나 구상나무 같은 것 역시 아무리 예뻐도 야생화라고 부르지 않습니다(하지만 키가 작은 일부 관목류의 꽃은 야생화에 포함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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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봄맞이(강원도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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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여러 자료에서 야생화의 종수를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종수와 동일하게 집계해서 제시하는 건 야생화의 개념을 야생식물(또는 단순하게 식물)과 동일하게 인식한 데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야생화와 야생식물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야생식물은 야생화보다 넓은 개념의 용어입니다. 야생화와 야생식물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야생화는 꽃에 한해서 말하는 것이고, 야생식물은 식물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래 네 장의 사진 중 야생화라고 부를 만한 건 한 장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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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올라오는 싹이라든가, 잎만 남은 상태라든가, 열매만 달고 있는 모습의 것들은 야생식물이라고 하지 야생화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즉, 꽃이 있어야만 야생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생화란 ‘야생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며 관상 가치가 느껴지는, 초본류나 일부 관목류의 꽃(식물)’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꽃’ 대신 ‘식물’을 넣어 정의하면 야생화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혀 야생식물과 같이 취급하는 일이 됩니다.

꽃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꽃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주 적습니다.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지 못하기에 꽃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지 않으며, 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꽃에 대해 알기, 꽃 이름부터 시작하세요. 꽃은 이름만 잘 알아도 50점은 먹고 들어갑니다. 이름 안에 그 꽃에 대한 정보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선생 노릇도 할 수 있으니 계절 별로 꽃 이름 열 개씩만 공부해도 무식한 제자 몇쯤은 거느리고 다닐 수 있습니다. 올해는 기필코 꽃맹탈출 꼭 이루시고 더 나아가 꽃선생 되어 즐거운 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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