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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IT여담] 한국블록체인협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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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점은?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국블록체인협회가 26일 창립총회를 열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습니다. 가상통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재, 거래소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위해 신성장 동력을 제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투기 열풍에 휘말린 가상통화에 대한 엇갈린 가치판단과 달리 블록체인 기술 육성에 대한 의지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협회 창립 자체는 큰 의미가 있지만, 출범을 축하하기 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도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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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상통화협회인가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원사는 66개사며 거래소는 25개사입니다. 나머지 41개사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라는 뜻인데, 비중으로 보면 블록체인에 무게가 실려 보입니다.

진대제 초대 회장도 "블록체인은 제2의 반도체"라면서 새로운 인터넷 혁명을 이끌 핵심 기술이라고 부르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진 회장은 1983년 삼성전자 입사 후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으며 2000년에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네트워크 총괄 사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공실적이 화제인 가운데, 진 회장은 반도체 신화의 중심인 본인의이미지를 블록체인 기술에 투영시켜 협회를 이끌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협회의 세력구도입니다. 현재 한국블록체인협회를 주도하는 곳은 대부분 거래소입니다.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4대 거래소 중 빗썸, 코인원, 코빗이 막대한 분담금을 내며 사실상 협회를 끌어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가상통화 열풍을 통해 돈을 쓸어 모으고 있는 거래소가 협회를 주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운신의 폭이 넓으니 넓은 의미로 봉사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협회를 주도하며 사실상 군소 거래소와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배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창립 직전인 22일 밤, 협회가 정관개정작업에 돌입하며 대부분의 협회원들에게 '확인만 하고 넘기라'는 요청을 한 사실이 대표적입니다. 협회에 속해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A사는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협회 정관개정에 돌입하며 22일 밤 갑자기 메일을 보내왔는데, 확인해보니 이미 7번이나 수정된 상태였다"면서 "7번이나 정관개정을 시도할 동안 다른 협회원에게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고, 갑자기 정관개정안을 보내와 몇 시간만에 확인하고 넘기라는 요청을 한 것은 사실상 요식행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거래소와 블록체인을 분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군소 거래소의 경우 정부 정책에 따라 30일 은행과의 계좌연동이 허용되지 않는 등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이익은 '기준에 미지치 못하는 군소 거래소를 유지해 피해를 양산할 수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어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협회가 주요 거래소 중심으로 작동하며 44개에 이르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 요식행위만 강요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물론 분담금을 내는 곳이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정회원, 준회원의 차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협회가 가상통화협회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와 대중의 차가운 시선이 부담되어 간판으로만 블록체인을 표방하고 있는 것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회는 미흡한 점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협회 창립에 나서며 시간에 쫒기는 등 정신이 없었다"면서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의 운영에 있어 반드시 신경쓰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체가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는 전제를 가집니다. 이왕 연결했으니 돈되는 협회원은 물론, 미래가치를 가진 협회원들의 목소리도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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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이 창립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정치와의 연결고리

100%라고는 말 못하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협회는 정치적입니다.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판하기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목이 있는 복잡한 대목입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도 지극히 정치적입니다. 진대제 회장부터 노무현 정부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2007년 11월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도 마찬가지입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로 활동한 후 2012년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국내 ICT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정치인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협회의 수장과 실질적 리더가 ICT는 물론 정계에도 인연이 있다는 점은, 협회의 고민을 잘 말해주는 지점입니다.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며 블록체인 기술 육성에 나서야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협회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입니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만큼 중요한 것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선명한 로드맵입니다. 업계에서는 '협회원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두고 두 사람에 대한 판단이 크게 엇갈립니다.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산업이 초기이기 때문에 완전한 전문가는 없지만, 협회가 벌써부터 거대 거래소 중심의 판을 짜는 것을 보면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으니,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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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에 있는 가상통화 거래소 오프라인 객장. 출처=뉴시스


논란을 걷어내라

협회 창립총회 당시 빗썸의 서버다운, 내부거래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행사장에 난입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아직 의혹제기 수준이지만, 최근 다양한 논란으로 수사를 받고있는 거래소의 사정을 보면 쉽게 넘길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아 24일 공개한 ‘가상화폐거래소 보안취약점 점검결과’에 따르면 10개 중요 거래소 중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에서 갖춰야 할 보안기준 51개 항목을 정상통과한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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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창립총회 중 빗썸을 규탄하는 피해자들이 난입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가상통화 거래의 투명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도 중요합니다. 다만 고차원적인 논의를 하기 전 협회는 당면과제로 이용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빠르게 찾아야 합니다. 최근 폐막한 세계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8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향연에 환호성을 자아내던 중 갑자기 찾아온 정전으로 구석기 시대가 된 것처럼, '기본'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청사진도 의미가 없습니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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