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박근혜도 '블랙리스트' 공범"…조윤선은 법정구속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기춘 징역 3년→4년으로 형량 늘고

조윤선은 집행유예→징역 2년으로 재구속

"박근혜 전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공범'"

"좌파 문예계 지원배제, 포괄적 승인"

중앙일보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뒤에서 남편인 박성엽 변호사가 함께 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윤선 피고인, 변명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조윤선(52) 전 정무수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소심 선고가 열리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이 ‘무죄를 확신하느냐’며 질문을 던졌을 때에도, 재판장이 징역 2년을 선고한 뒤에도 말이 없었다. 재판장이 “구속 사실을 변호인에게 통보하면 되겠느냐”고 묻자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남편인 박성엽 변호사는 눈가를 닦으며 조 전 수석 쪽을 살짝 보더니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곧바로 고개를 젖혔다.

지난해 7월 1심 선고에서 국회 위증 혐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죄를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조 전 수석이 2심에서 다시 구속됐다. 직권을 남용해 문예기금·영화·도서 관련 지원배제가 이뤄지도록 한 점이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23일 조 전 수석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심 선고보다 1년이 늘어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김상률 전 교문수석(징역 1년6월)·김소영 전 문체비서관(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2년)·김종덕 전 문체부장관(징역2년)·신동철 정무비서관(징역 1년6월)·정관주 전 문체부1차관(징역 1년6월)은 1심과 같은 형량을 받았다.

항소심 판결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으로 인정한 점이다. 1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이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알 수 없고, 어떤 내용을 대통령이 승인했는지 알 수 없다”고 본 것을 항소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계획과 기준이 담긴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것은 지원배제를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뒤집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특정 문예지에 대한 개별 지원배제도 직접 언급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면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를 더하여 보면,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의사의 결합을 이뤄 공모관계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공범 아냐'→'대통령도 공범' 달라진 판단 이유는


"대통령은 보수주의…기조 표방일뿐" → "정책 선언 그 이상…대통령 직권남용"





1심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여 당선되었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 볼 수 없다"

2심 "대통령의 행위는 단순히 좌파 지원 축소 우파지원 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임을 선언하는데 그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국정최고책임자인 자신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김기춘 등의 직권남용행위에 공모 가공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고사실 알 수 없어" → "문건 내용 구체적…지원배제 승인한것"





1심 "대통령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이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알 수 없어 대통령이 이를 승인 내지 지시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2심 "대통령은 지원배제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기준을 마련한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했다. 이는 지원배제를 포괄적으로 승인했다는 걸 의미한다"



"지시자체로 위법은 아냐" → "김기춘과 차례로 공모한 것"





1심 "문예지 지원문제, 건전영화 지원문제, 보조금 집행문제, 종북 성향 서적의 도서관 비치문제 등에 관해 직접 언급하고 지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와 같은 지시내용 자체가 위법·부당한 것은 아니다"





2심 "대통령은 특정 문예지에 대한 개별 지원배제를 직접 언급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하는 등 지원배제를 위한 여러 계획을 보고받고 승인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를 더해서 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순차적으로 의사결합을 이뤄 공모관계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중앙일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체부 내에서 ‘인사 학살’로 불렸던 1급 공무원 강요사직에 대한 단죄도 이뤄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합리적인 사유 없이 자의적으로” 2014년 10월 최규학 전 문체부 기획조정실장?김용삼 전 종무실장?신용언 전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을 면직시켰고 이는 "위법한 행위"라고 봤다.

재판부는 “공무원법이 1급 공무원의 면직을 허용하는 취지는 그 직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지 1급 공무원을 신분보장 대상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1심에서 “1급 공무원의 임명과 면직에 관해서는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돼 있다”며 무죄로 본 것과 대조적이다.

재판부는 3명의 실장들이 30여년간 몸담아온 공무원 조직을 갑자기 떠나게 된 것은 지원배제 실행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이전 장관과 가까운 사이었다거나 본인들이 지원배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사직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중앙일보

왼쪽부터 김 전 비서실장, 조 전 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부와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좌파'로 규정해 명단 형태로 관리를 하면서 지원에서 배제하고자 한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이는 "문화의 자율성과 불편부당의 원칙, 중립성 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한 헌법원칙에 위배돼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평가했다.

재판장은 선고 형량을 말하기에 앞서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일을 국가권력의 최고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측근 보좌진들이 나서서 조직적?장기적?계획적?집단적으로 하는 경우는 국정 전 분야를 통틀어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의 옳고 그름이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억압하거나 차별적 대우를 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의 길은 퇴색되고 전체주의로 흐르게 된다. 참작할만한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고 말한 뒤 형량을 밝혔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