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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경향시선]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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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것은 커다란 손 같았다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손

쓰러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싸주는 따뜻한 손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손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손

시간의 물결 위로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녀린 손

아픈 마음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

팔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

끝내 놓쳐버린 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그 손 김광규(1941~)

생각해보면 뒤에서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 나는 원조를 받고, 나는 지지를 받는다. 반짝이는 별에게 밤의 하늘이, 캄캄한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는 것처럼 누군가 혹은 어떤 힘은 나의 배경이 되어준다. 험한 낭떠러지로 내몰리지 않도록 밑과 옆에서 내 존재의 근거가 되어준다. 기초로 받쳐 놓은 주춧돌처럼. 그러나 그 후원의 손은 스쳐가는 바람 같고, 움켜쥘 수 없는 물과 같아서 대면하기가 쉽지 않다. 오동잎처럼 큼직하고 묵직해서 듬직하다고 느낄 뿐이다. 나를 잡아주었던 손들을 생각해본다. 외할머니가 감나무 아래에서 어릴 적 나를 잡아주었고, 누나가 여름밤의 들마루에서 사춘기 적 나를 잡아주었다. 뻗어가는 산등성이, 고요한 저수지, 풀벌레 소리, 어린 염소와 잠자리, 토끼와 강아지, 마당에 세워두었던 눈사람이 내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손이었다. 요즘엔 나의 손이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나를 꽉 잡아주던, 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의 늙은 손을 나의 희고 가녀린 손이 잡는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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