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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세상사는 이야기] 비트코인·블록체인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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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은행, 중개인들이 난감해할 것 같다. 정보와 자산의 병목 지점에서 일종의 중개료를 받는 것이 주 수입원(cash cow)이었는데 만약 이대로라면 고객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 노 생큐(No thank you)"를 언급할 순간이 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통화를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나 범법자들을 잡아들여야 하는 법무부는 '이거 가상화폐라는 게 변동성도 심하고 통제도 안 되고 검은돈이 숨어들어 갈 수 있다'고 난색을 표할 것이다. 거래소 폐쇄 발언으로 시장에 제초제를 뿌려놓아 아수라장이 된 바 있으니 일단 한동안은 '관망' 자세를 취할 듯하다. 마음이 초조한 쪽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다. '아무리 그래도 블록체인 기술은…이게 대세인데…',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변혁의 기로에서, 촌각을 다투는 정보기술(IT) 세계에서 선점 효과를 위해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밀고 있을 듯하다.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이야기다. 탈중앙을 표방하는 알고리즘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를 두지 않고 수십~수백만의 개인, 그들 각각의 컴퓨터에 서버 역할을 맡긴다. 대가로 가상화폐를 준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누가 만들었는지 보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사람들?)이란다. 2008년 9장짜리 논문과 함께 등장한 뒤 3년 후 종적을 감췄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룹일 수도 있다(자신이 '바로 그'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지 않았으나 아직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의도는 아직 모르겠지만 사람 마음 읽는 건 타고난 이 같다. 발표 시점이 묘하다. 2008년 10월은 투자은행들 거품이 터진 직후였다. 도덕적 해이로 뚫린 금고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니 사람들은 은행 시스템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중앙집권적 비대화와 기득권에 대한 반감은 블록체인 기술에도 담겨 있다. 일대일로 거래하고 금융기관은 필요치 않다. 중개자에 몰아주었던 믿음을 거래 당사자들 각자에게 분산시켜 놓았다. 일명 '분산된 믿음'이다. 돈이 오간 사람들은 모두 거래원장의 복사본을 쥐고 있고 서로 팔짱 끼듯 연결돼 있다. 해킹하고 싶으면 수십~수만 개의 컴퓨터를 다 개별적으로 건드려야 하니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거래소가 해킹돼도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해킹됐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들어본 적이 없다.

잘만 하면 생활 속에서 블록체인이 가져다줄 이점이 있을 것이다. 투명한 제품관리가 가능하다고 믿고 거물급 물류회사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물류회사 UPS가 업계 표준 제작에 뛰어들었고, 세계 최대 해상 운송업체 머스크는 IBM 왓슨의 블록체인 기술을 컨테이너 화물 추적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실화된다면 농장에서 식탁까지 식재료 유통도 투명하게 꿰뚫어보지 않을까. 미국 월마트에서 이 기술을 망고에 적용해봤더니 한 달 넘게 걸리던 이력추적 기간이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물인터넷(IoT) 등 올마이티(almighty)를 가능하게 할 기술인 건 알겠다. 다만 혁신이란 내 곁에 오기까지 늘 범용성 그리고 생태계 조성이라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그 길목에 가상화폐가 서 있다.

보상 없이는 블록체인을 활성화할 수 없다고 해 뜨겁게 수요가 창출된 가상화폐는 기술을 빙자한 사기라는 혹평과 IT 신세계의 지평을 열 것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정부의 고민도 그럴 것이다. 다가올 대세라는 확신으로 받아들이자니 통화가치, 안전성이 걱정되고 못 본 척하자니 산업 주도권을 뺏길까 우려되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말이다. 혹시 정부가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면 나는 투기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규제하되 산업은 육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백억·수백억 '인생 한 방'의 신화, 사표에 수표 얹어 직장을 단번에 정리했다는 확인 불가능한 영웅담에 '노동의 가치'가 흔들렸었다. 성장통이라고 보기엔 김치 프리미엄의 우리나라가 주변국들에 비해 강도가 더 세다. 그렇다고 의욕이 앞서 국민들을 성악설로 단죄하기보다 왜 그 많은 젊은이들이 불확실한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는지 먼저 듣고 규제의 범위와 강도를 조절하기를 요청하고 싶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가상공간의 문제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1세대 닷컴에서도 버블이냐 기초체력이냐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생태계의 주역들은 뒤돌아보면 어느새 자라나고 있었다.

[김은혜 MBN 앵커·특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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