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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friday] 두오모는 패스~ 뒷골목에서 찾은 피렌체의 맛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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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 여행] '이탈리아 여행 5대도시' 피렌체

정답은 피해서… 관광객 북적이는 성당·미술관 대신 골목길 탐험 나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 1612년 약국으로 출발, 화장품 브랜드 본점… 티룸서 茶와 술 시음

세상 하나뿐인 구두… 데이-루이스가 머물며 구두 제작법 배웠던 匠人의 공방도 볼만

조선일보

①피렌체 레푸블리카 광장의 ‘질리’ 카페 앞에 한껏 차려입은 남자들이 모여 있다. 피렌체는 멋쟁이 남자들의 놀이터 같은 도시.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 기간에는 멋쟁이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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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란 가운데 있는 것들의 숙명일지 모른다. 피렌체는 그런 도시다. 이른바 '이탈리아 여행 5대 도시' 중 하나. 그러면서도 북부 밀라노·베네치아와 중부 이남 로마·나폴리의 가운데에 있는 피렌체는 남에서 북으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하며 거쳐 가는 곳으로 여겨지곤 했다.

여행자들이 피렌체에서 찾는 '정답'은 뻔하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됐던 두오모 성당, 숱한 르네상스 걸작을 소장한 우피치 미술관, 아르노 강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베키오 다리…. 그러나 정답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정답이기에 이런 명소들은 늘 관광객으로 붐비고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수백m씩 늘어선다.

발상을 바꿔 피렌체의 골목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맛과 멋, 향(香)이 보물 찾기하듯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책에서, 사진에서 본 곳을 일별(一瞥)해야 한다는 강박을 접어놓으면 보인다. 중앙역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유명한 대성당, 그 앞 광장에도 붙어 있는 이 이름은 한국에선 유명 여배우가 애용한다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명으로 더 친숙하다. 역에서 5분 정도면 걸어서 닿는 곳에 본점이 있다. 매장 안내 팸플릿에 한국어가 들어 있을 만큼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로 통하는 곳이다. 그러나 화장품·향수 외에 초콜릿·사탕부터 차와 술까지 판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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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루스 오킨이 1951년 피렌체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촬영한 ‘이탈리아의 미국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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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나오는 방에 인기 기초 화장품이 있고 옆방에선 비누와 방향제를 판다. 관광객들은 대개 이곳까지 둘러보고 돌아가는데,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티룸(tea room)이 나온다. 차와 술을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다. 바텐더처럼 술 선반을 지키고 선 점원에게 가장 잘 팔리는 게 뭔지 묻자 확신에 찬 어조로 '알케르메스(Alkermes)'를 권한다. 루비처럼 빨간색이 선명한 술의 계피향이 달콤하다. 진열장 속의 먼지 낀 약병과 실험 도구들은 1612년 약국으로 출발해 허브·약초의 향을 다뤄왔다는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남자들에게 피렌체는 패션의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에서 철마다 열리는 패션쇼가 디자이너들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면, 피렌체는 좀 더 '실전'에 가까운 곳이다. 이탈리아 남성복을 대표하기에 손색없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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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의 라스트(구두골)가 한쪽 벽에 가득 걸린 로베르토 우골리니의 구두 공방(위). 남성복 가게들이 모여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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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에서 미켈란젤로 광장 방향으로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걷는다. 구두 가게 '스테파노 베메르'까지 약 20분. 장인(匠人)의 이름을 딴 이 공방은 명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1999년 약 10개월간 머물며 구두 제작을 배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잠정 은퇴를 선언한 데이-루이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메소드 연기(배역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 연기)의 달인인 데이-루이스와 천재로 통했던 베메르의 완벽주의가 통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당시엔 피렌체 시내 중심가에 기성화 매장과 수제화 공방이 각각 있었으나 2014년 베메르가 세상을 떠난 뒤 양쪽을 합쳐 이곳으로 옮겼다. 지금도 가게 가운데 작업대가 있어 구두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로베르토 우골리니는 베메르와 함께 피렌체 구두의 쌍벽으로 평가받는 장인이다. 그의 이름을 딴 가게에선 지금도 우골리니가 직접 손으로 구두를 만든다. 실내엔 망치로 뚝딱뚝딱 굽을 두드리는 소리와 가죽 냄새가 가득하다. 맞춤 구두가 드문 한국에서는 낯선 감각이다. 기성화는 준비 중. 지금은 맞춤만 하는데 2000유로(약 260만원)부터 시작한다. 구두 한 켤레 값 치고 비싸 보여도 발 모양대로 라스트(구두골)를 깎아 세상에 한 켤레뿐인 구두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쪽 벽 전체에 손님 이름이 적힌 라스트가 걸려 있다. 우골리니는 "아시아에서는 중국·일본이 많지만 한국인 고객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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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가 자리 잡은 레푸블리카 광장. 목마 타는 아이들과 관광객, 저녁을 즐기는 현지인들로 늦게까지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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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 부근 비냐 누오바(Vigna Nuova) 거리에도 개성 있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에서 레푸블리카 광장 쪽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고급 브랜드 매장들처럼 사람을 기죽이지 않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프라시(Frasi)는 넥타이 같은 소품부터 코트까지 다양하게 갖췄다. 산뜻하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스웨터가 매력적이다. 주인 시모네 리기의 스타일이 패션 사진가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름이 났다. 주인장이 모델까지 겸하는 셈. 흰 턱수염이 풍성한 리기는 말쑥하고 우아하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선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 사진가 스콧 슈만은 사진집 '사토리얼리스트'에서 리기를 두고 "사토리얼리스트를 처음 시작한 의도는 바로 이런 남자들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타이 유어 타이'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고급 넥타이 전문점이다. 심지 없이 한 장의 천을 7번 접어 만드는 '세븐 폴드' 넥타이로 유명하다. 양복과 넥타이가 조금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WP스토어'가 대안이다. 워크웨어(작업복에서 영감을 얻은 의류) 스타일의 캐주얼부터 캠핑 의류까지 좀 더 젊은 감각의 옷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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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테(잘게 갈아 양념한 육류)를 얹은 빵도 피렌체에서 즐기는 전채 요리.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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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금세 출출해진다. 피렌체에서 맛봐야 할 음식은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즉 피렌체식 스테이크다. 한국에서 두툼하다고 얘기하던 것보다 두 배쯤 두꺼운 티본스테이크를 겉만 살짝 구워 내온다. '일 라티니'는 끼니 때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 작아 보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방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지하 와인 저장고 방에 앉으면 휴대전화에 '서비스 불가 지역' 알림이 나오면서 이곳이 유럽임을 일깨워 준다.

커피를 홀짝이며 여정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은 레푸블리카 광장의 카페 '질리'(Gilli)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피렌체 카페' '피렌체 커피 맛집'으로 통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미국 사진가 루스 오킨의 1951년 작 '이탈리아의 미국 여성(American girl in Italy)'의 배경이 됐기 때문. 질리 앞을 걸어가는 미국 배우 니나리 크레이그에게 이탈리아 남자들이 휘파람을 부는 유명한 사진이다.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희롱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여겨졌고, 워낙 절묘한 순간 포착인지라 연출 논란도 계속됐지만 정작 크레이그 본인은 모두 "노(no)"라고 했다.

어두워지면 광장의 회전목마에 불이 들어온다. 타는 이가 많지 않은 회전목마란 어딘가 처량해 보이기 마련이지만, 북적이는 광장의 활기 때문인지 서글픈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밤이 깊어가고 짧았던 경유(經由)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온다.

●여행정보

교통
피렌체엔 공항도 있다. 중앙역 앞 터미널에서 버스로 30분쯤 걸린다.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을 땐 짐을 먼저 부쳐버리지 말 것. 구입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음식
오후 8시 전후로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곳이 많으니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피렌체식 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는 보통 1㎏부터 주문을 받는다.

숙박
매년 1·6월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 기간엔 숙박비가 오른다. 객실과 간단한 아침식사만 주는 ‘B&B’(bed & breakfast) 형태의 숙소도 고려해볼 만하다.

[피렌체=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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