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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불가 → 유예 → 재검토… 유치원 영어수업 제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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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정책에 혼란만 초래 / 교육부, 거센 반발 여론에 ‘백기’ / 방과후 과정 운영기준 2019년 초 마련 /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도 수립 / 유아 고액학원은 강력한 단속 추진 / 선거 의식 정치권 압박에 방향 튼 듯 / 학부모들 “마음고생만 시켜” 싸늘 / 교총 “반대 목소리도 귀 기울여

세계일보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특별활동) 금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의견 수렴 기간을 거쳐 내년 초까지 영어수업 금지 여부를 비롯한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수립할 방침이다. 유아 대상 고액 영어학원 단속도 추진한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거센 반발 여론에 교육부가 백기를 든 모양새다. 이로써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육부가 설익은 정책을 들고 나왔다가 여론에 밀려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는 16일 “국민의 우려와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 유아 등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영어 사교육과 불법 관행 개선에 주력하고,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기준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철회’나 ‘유예’ 등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교육부가 올해 3월 신학기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겠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교육부는 조기 영어교육의 폐해를 개선하고 올해부터 초등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는 것과 발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 부담 등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 청원이 빗발치기도 했다.

세계일보

교육부가 방침 고수에서 유예로, 다시 전면 재검토로 ‘말 바꾸기’를 한 데는 오는 6월13일 시행하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압박 탓도 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신년 만찬 자리에서 정책 시행을 유예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정부를 향한 반발 여론이 자칫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한 것이다.

교육부는 학부모와 전문가, 학원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내년 초에 영어수업 금지 여부 등을 담은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기준을 만들어 발표한다. 방과후과정 운영지침 위반 시에는 시정명령 등 행정제재를 취하는 내용도 포함한다. 다만 각 시도교육청이 지역 교육여건을 고려해 자체 수립하는 방과후과정 지침은 존중할 생각이다.

교육부는 사회·경제적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양질의 영어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도 연내에 마련하기로 했다. 학교 영어수업의 교수학습 방식·평가체계 등 전반을 재정비해 초등 3학년부터 학교가 영어를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초등뿐 아니라 중고교 영어교육 개선도 함께 검토한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고액 영어학원에는 강력한 단속과 함께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법령을 개정해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지나친 교습시간과 교습비, 교습 내용 등을 규제하고 시도교육청별로 상시 지도·점검 체계를 갖춘다. 다음달부터는 ‘영어유치원’ 등 명칭 불법 사용, 안전시설 미비 등에 관해 관계부처와 합동점검을 한다.

교육부가 애초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안을 들고 나왔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유치원생 학부모 이모(37·여)씨는 “당장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는 줄 알고 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며 “이렇게 유예할 거였으면서 정부가 학부모들 마음고생만 시킨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정부가 이렇게 정책을 번복하면서 혼란을 초래한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앞으로도 교육정책은 무조건 밀어붙이지 말고 반대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등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향후 문재인정부의 교육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8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부터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폐지 정책까지 문재인정부의 주요 교육공약들이 줄줄이 유예되거나 좌절된 데 이어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신익현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이번 논란과 관련,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국민 의견과 의제 관리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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