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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학교 휴대폰 금지' 학칙서 빼려는 교육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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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니… 교육감協, 학생인권조례로 시행령 뒤집기 시도]

두발·복장·휴대전화 금지 등 교육감들 정부에 시행령개정 권고

휴대폰 놓고 학생·학교 갈등 큰데 교장들 "교육감이 현장을 몰라"

학칙(學則)에 따라 1교시 수업 시작 전 학생들 휴대전화를 수거한 뒤 하교할 때 되돌려주는 서울 A고에서 지난해 신학기 초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휴대전화를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학생들 요청을 받아들여 휴대전화를 걷지 않는 대신 수업 시간에 사용하면 학칙을 따르기로 학생들과 합의한 것이다. 실험은 1주일 만에 학생들의 '항복 선언'으로 끝났다. A고 교장은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가 너무 많았다"면서 "원래 학칙대로 휴대전화를 수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권 바뀌니 "시행령 고치라"는 교육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지난 11일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학칙에 담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하면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하지 말도록 규정돼 있으니 상위법인 시행령을 고치라는 게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이다. 그러자 이번엔 보수 성향 교육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고 나섰다. 오는 5월 치러지는 경기도교육감 후보 출마를 선언한 한 교육계 인사는 15일 "학생인권조례로 교권이 붕괴했다. 교육감이 되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지난달엔 서울시 한 고교 교장이 법원에 '서울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소송'을 내기도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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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을 일부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에 맞춰 개정하라는 진보 교육감들 요구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권이 바뀌니 꼬리(인권조례)로 몸통(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흔들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인권조례는 2010년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경기교육감 시절 전국 최초로 도입한 후, 서울·광주에 이어 2013년 전북까지 4개 지역에 도입됐다. 이후 4년여 동안 인권조례를 도입한 지자체가 없자, 지난 11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교육부에 시행령을 고치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학교장이 '두발·복장·소지품 검사·휴대전화 금지 여부'를 학칙으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조 4항 7호를 '학교 내 교육·연구 활동 보호와 생활질서 유지에 대한 사항 등 학생의 인권과 학생 생활에 관한 사항'으로 바꿔 달라는 게 교육감협의회의 요구다. 이에 대해 김진균 충북 덕산중 교장은 "시행령에서 이런 구체적 내용을 빼면 결국 학교들은 휴대전화를 금지할 명분이 사라진다. 학교 수업이 제대로 안 될 게 뻔한데 교육감들이 이런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휴대폰 소지 비율은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학생의 96.5%, 고등학생은 98.7%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철 교총 대변인은 "학생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의존도가 매년 커져 이젠 휴대폰을 분신처럼 생각해 놓기 힘들어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할 경우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과 선생님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이 일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교총 설문조사 결과, 학교가 휴대전화 사용 제한을 못 하도록 하는 교육감들의 주장에 대해 교원 93.2%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션스쿨을 왜 인권조례로 규제하나"

인권조례가 미션스쿨의 설립 취지를 제한한다는 주장도 있다. 곽일천 서울디지텍고 교장 등 서울시내 학생과 교사 14명은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상대로 '서울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소송'을 최근 제기했다. 곽 교장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미션 스쿨인 학교 설립 취지를 훼손하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혼란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디지텍고는 최근 학교 규칙을 개정해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는 생명존중 및 성 관련(동성애 포함) 사항 등에 대해서 사전예방교육을 하고 필요할 경우 훈육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는데, 서울시교육청 측은 이 학칙이 조례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곽 교장은 "미션스쿨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 자율권이 있는데 학생인권조례가 이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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