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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비핵화’ 말도 못 꺼내…‘평창’ 北 선전 악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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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지난 1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 종료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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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이 오랜만에 열렸다.

이번 회담은 남북한 장차관급이 동시에 모인 드문 경우다. 예전에는 장관급 회담 따로, 차관급 회담 따로 열렸는데, 이번에는 남북한 장차관급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인 결과인데, 북한이 그만큼 다급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갑자기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언급하고, 또한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은 왜 그렇게 다급했으며, 어떤 의도로 지금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가.

지난 1월 9일 아침, 남북한 고위급 회담 참석자들이 상견례를 할 때, 북한 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기자 선생들도 다 관심이 많아서 오신 거 같은데 도리어 확 드러내놓고 그렇게 (공개 회담) 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북한이 회담을 공개하자고 한 것은, 이번 회담의 주도권은 본인들에게 있으며, 본인들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통 크게’ 결단했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 한다는 의도를 공개 천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본인들의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대응은 훌륭했다.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이를 완곡하게 거부했다. 회담 전 수차례 회담의 예행 연습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측은 북한의 이런 의도를 이미 간파했을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회담은 3개 항에 합의했다. 첫째, 남과 북은 평창동계올림픽대회와 동계패럴림픽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협력한다. 둘째,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이를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셋째, 남과 북은 남북선언들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나가고, 이를 위해 쌍방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고위급 회담과 함께 각 분야의 회담도 개최한다.

평창올림픽 관련 부분은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언급한 부분이다. 최고지도자의 말이 헌법과도 같은 북한 상황에서 비춰볼 때, 굳이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자신들의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대규모 응원단과 참관단, 예술단을 보내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예술단과 응원단 등을 보내 남쪽의 대북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북한 의도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과거에는 북한을 신비의 나라로 생각하고 북한 응원단이나 예술단을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지금은 북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게 돼 신비한 감정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전체주의적 행동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낄 정도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합의 사항부터는 그 성격이 다르다. 두 번째 항은 군사당국회담을 열기로 남북이 합의한 것인데, 이 합의를 우리가 어떻게 이끄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군사당국회담을 통해 비핵화 문제와 ICBM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1994년 이후부터 북한은 줄곧 핵문제는 우리와 논의할 거리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번 회담에서도 우리 측이 비핵화 문제를 꺼내니 북한의 리선권은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점이 걱정거리다. 남북 군사당국 간 회담이 열렸음에도 비핵화나 ICBM 문제 등을 거론할 수 없게 되면, 문재인정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고사하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우리 정부가 시달릴 가능성만 높아진다.

남북회담이 열리기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회담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외교적 수사로서는 매우 드문 것이다. 일반적인 외교적 언급에서 ‘절대’ ‘반드시’ ‘꼭’ 등의 수사를 발견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외교적 수사는 해석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라는 용어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수사를 몰라서 한 언급이 아니라, 자신의 남북대화에 대한 지지 발언이 그만큼 다양한 함의를 포함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 즉, 남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와 미사일 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미국으로서는 기회를 줬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100% 지지’ 언급은 일종의 양날의 검이다.

이런 추론은 현재 미군의 해공군 전력의 60%가 일본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으로 집중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미군 전력의 한반도 주변 집중 배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을 볼 때 딱히 그렇지 않다. 군사회담에서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회담이 북한의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주장을 선전하는 장이 되면, 본의 아니게 한반도 위기지수만 높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군사회담 개최 자체는 반길 일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상당히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과 연결해 세 번째 합의 사항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한의 리선권은 “뒤돌아보면 6·15 시대는 그 모든 것이 다 귀중하고 그리운 것이었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나가기로 했다”는 합의문과 일맥상통한다.

명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북한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 북한은 남북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자고 함으로써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시간을 벌려는 것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대열에서 대한민국을 분리시키려는 의도다. 한마디로 북한은 회담 초기부터 이런 부분을 노리고 작심하고 나왔다. 중국이 이를 적극 찬성하고 나설 것은 분명하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국과 일본, 미국의 남방 동맹을 깨는 일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이번 남북회담 합의문은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에게 상당히 위험한 숙제를 던져줬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의 상당수는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갤럽이 1월 2일부터 4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남북대화를 제의한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이가 전체 응답자의 65%에 달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90%에 달했다. 이는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지금 북한이 대화를 들고나온 이유가 순수한 의도가 아니며,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조차 절대다수가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목을 매고 북한과의 대화에만 무조건적으로 매달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칫 섣부른 북한과의 대화는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국민적 여론에 아주 민감한 정부인 만큼 대북정책에서도 이런 민감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길 바란다.

회담에서 북한의 리선권이 한 말이 떠오른다.

“예로부터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고 이 천심에 받들려서 북남 고위급 회담이 마련됐다.”

이 말을 명심해야 할 존재는 북한이다. 북한은 지금 대한민국 민심이 북한의 의도에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천심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2호 (2018.1.17~2018.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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