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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식물명에 들어간 '개'... 진짜 개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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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의 해, 2018년이 밝았습니다. 아직 설날이 되진 않았지만 무술년 황금 개띠 해를 맞아 식물명에 쓰이는 ‘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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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띠 해인 2018년이 밝았다. 백두산 등정길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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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는 ‘개’라는 말을 특이하게 씁니다. ‘개이득’의 ‘개’가 그렇습니다. 여기서의 ‘개’는 ‘많은’ 또는 ‘엄청난’이라는 뜻이어서 개이득은 ‘큰 이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개’가 최상급 강조 의미의 접두사라는 것입니다.

‘개’는 상스러운 표현으로 자주 쓰는 단어인데 말입니다. 사용의 확장은 의미의 확장으로 이어져 어느 순간부터 강조의 의미가 생겨난 건 사실입니다. 대개 속된 표현에 많이 썼습니다. ‘골을 내다’ 앞에 ‘개’를 붙여 ‘개골을 내다, 개골이 나다’와 같이 쓴 것이 그 예입니다. ‘쪽팔리다’와 비슷한 ‘쪽당하다’ 같은 상스러운 말 앞에 더 상스러운 ‘개’를 붙여 ‘개쪽당하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산악인 엄홍길 씨가 2009년 광고에서 선보인 카피문구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합니다. ‘개고생’이 국립국어원이 지정한 표준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고생을 강조하는 의미라지만 어떻게 저런 말이 광고심의를 통과했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개’는 상스럽고 부정적인 말과 어울려 쓰는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선 예와 달리 ‘개이득’은 긍정적인 말에 썼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말의 탄생기(?)를 살펴보면 그 당시의 ‘개’의 의미는 약간 달랐습니다. 인터넷TV인 아프리카TV에서 ‘해물파전’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 BJ가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보니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개이득을 외치면서 자신의 멘탈을 관리했던 데서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자를 쓰고 싶을 만큼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지만 이득을 본 것처럼 좋게 생각하겠다는, 즉 자기 최면 같은 목적에서 쓴 말입니다. 강조보다는 자조적인 의미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신선하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퍼져나가면서 강조의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다양한 단어와 결합시킨 파생어들이 생겨났습니다. 일종의 유행어 성향이 강하므로 얼마나 오래 사용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긍정적인 단어와 결합시킨 첫 사례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식물명에 등장하는 ‘개’는 대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존의 식물이나 대상에 비해 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개’는 파생어를 만드는 접두사로 쓰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개'의 12번째 정의로 세 가지 의미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의미가 식물명에 흔히 쓰이는 ‘개’의 의미와 맞아떨어집니다.

개- 12
「접사」
「1」((일부 명사 앞에 붙어))‘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해당하는 예는 엄청 많습니다. 개옻나무, 개복수초, 개머루, 개지치, 개쑥부쟁이, 개박달나무, 개맥문동, 개족도리풀, 개싸리, 개산초, 개살구나무, 개다래, 개별꽃, 개오동, 개비자나무, 개망초, 개도둑놈의갈고리 등이 그렇습니다. 이중 개도둑놈의갈고리가 재미있습니다. 도둑놈의갈고리라는 식물과 유사하게 생긴 식물이라 앞에 ‘개’자를 붙인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하고 보니 ‘개를 훔쳐가는 도둑놈’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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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둑놈의갈고리는 개를 훔쳐가는 도둑과는 관련이 없는 이름이다.




개암나무는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경우입니다. 원래 개암나무는 밤나무와 열매가 비슷한데 조금 못하다는 뜻에서 ‘개밤(개ᄇᆞᆷ)나무’라고 하던 것이 변한 이름입니다. 실제로 개암나무의 열매는 싱거운 밤 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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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나무는 열매가 싱거운 밤 맛이 나서 밤보다 못하다는 뜻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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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는 이견이 좀 있습니다. 존경하는 홍윤표 교수님의 글에 따르면, 개의 고어인 ‘가히(犬)’는 독립된 명사로 쓰일 때는 16세기에 가서야 ‘개’로 변하지만, 파생어를 만드는 접두사로 쓰일 때는 15세기에 이미 ‘개’로 변화해서 쓰였습니다. <번역소학(1517년)>에서 ‘개의 새끼’를 뜻하는 말 ‘가히삿기’가 이미 ‘개삿기’로 나타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독립적으로 쓰일 때와 달리 접두사로 쓰일 때는 다른 단어와 합쳐지는 탓에 글자 수가 많아지므로 음운축약이 빨리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세기에 ‘가히나리’가 이미 ‘개나리’로 변화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물명고(1824)>에 등장하는 ‘개나리나모’라는 단어와 ‘개날이’로 기록된 단어가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점이 약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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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는 유래에 대해 약간 이견이 있는 이름이다. 사진은 직지사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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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진짜 개(dog)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많지 않으나 ‘개’가 명사이므로 다른 단어와 합쳐져 합성어가 됩니다. 개불알풀, 개똥쑥이 그에 해당합니다.
개불알풀은 열매의 모양이 개의 음낭과 닮은 풀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개불알풀 외에 큰개불알풀, 선개불알풀, 눈개불알풀, 좀개불알풀 등 발음하기 남사스러운 유사종이 있습니다. 개불알풀 말고 한때 개불알꽃으로 불렸던 것은 현재 복주머니란으로 순화해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이름을 바꿔주면서 어떤 것은 그대로 두고 있으니 형평에 어긋납니다. 꽃도 예쁘고 볼 일인가 봅니다. 복주머니란에 비해 개불알풀은 형편없이 작은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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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은 ‘개+똥쑥’이 아니라 ‘개똥+쑥’으로 된 이름입니다. 개똥은 당연히 개의 똥이고요. ‘개똥 같은 냄새가 나는 쑥 종류’라는 뜻이지 ‘개 같은 똥쑥’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짜 개똥 냄새가 난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는 뜻입니다. 아무 데나 나는 잡초처럼 여기다가 이제는 항암 성분이 들어 있다 해서 귀하신 몸으로 재배되는 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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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은 개똥 같은 냄새가 나는 쑥 종류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 말고 강아지가 들어가는 식물명으로 강아지풀, 금강아지풀, 갯강아지풀 정도가 있습니다. 이중 금강아지풀은 황금 개띠 해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니 올해 꼭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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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아지풀은 황금 개띠 해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식물이다



어떻게 하면 새해 인사를 신선하게 강조의 의미를 담아 건넬 수 있을까요? 올 한해 개이득 보시고 개건강하시기 바란다고 하면 정신 나갔느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의미에서 복주머니란 군락 사진 하나 던져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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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머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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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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