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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리뉴스]'바그다드의 종군기자'에서 '김재철의 입'으로...이진숙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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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57) 이름 앞엔 종종 두 가지 별명이 붙는다. ‘바그다드의 종군기자’이거나 ‘김재철의 입’이거나.

1986년 MBC에 입사한 이 전 사장은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 종군기자로 유명해졌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누빈 그에게 ‘살아있는 기자’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에게 찬사 아닌 비판이 쏟아진 건 이명박 정권 시절 김재철 전 사장 밑에서 홍보국장과 기획홍보본부장을 지내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김재철의 입’으로 불렸다. 2012년 공정방송을 망가뜨렸다는 이유로 MBC 기자회에서 제명됐다. 2015년 대전MBC 사장이 된 이후에도 구성원들의 퇴진 요구를 받았다. 결국 자신의 해임을 논의하는 MBC 주주총회를 나흘 앞둔 지난 8일 돌연 사임했다.

■바그다드의 종군기자

“기자생활 5년만에 겪은 바그다드 공습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그동안 7박8일동안 겪은 긴장이 하루아침에 졸음으로 다가왔다. 다른 기자들이 대부분 철수한 뒤 유엔의 이라크군 철군시한이 다가오는 순간순간 겁없는 나에게도 절망감보다는 오히려 이 역사적 전행을 체험할 수 있다는 흥분에서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략) 나는 계속 이번 전쟁을 취재, 청취자들에게 생생한 소식을 전할 것이다.”

1991년 1월 19일 MBC 사회부 기자이던 이 전 사장은 경향신문에 바그다드 탈출기를 기고했다. 이틀 전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는 과거 이라크 영토”라고 주장하며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전이 일어났다. 서른 한 살 젊은 기자는 전쟁 현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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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전 때도 기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전쟁이 발발할 조짐을 보이자 회사는 신변안전을 위해 요르단 암만으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암만으로 이동했으나 휴일 아침 차를 몰고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미리 재입국 비자를 신청해 승인받아놓은 덕분에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쟁이 나흘째로 접어들며 점점 격화되고 있던 2003년 3월 23일. 촬영기자 없이 직접 6㎜ 소형카메라를 들고 미군의 공습과 바그다드 함락 현장을 담았다. 그가 눈 앞에서 본 장면들은 ‘뉴스데스크’에서 1분43초짜리 리포트로 보도됐다. 이라크전이 시작된 뒤 국내 기자가 직접 취재한 첫 바그다드발 보도였다.

이 전 사장은 귀국 후 언론 인터뷰에서 “(바그다드에서) 처음부터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국경을 넘어올땐 눈물을 흘리면서 나왔다. 현장에서 취재하고 싶었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무척 아쉬웠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바그다드로 되돌아갈땐 속이 시원하고, 행복하고, 잘 들어왔다는 생각 뿐이었다”라고 했다.

■김재철의 ‘입’

‘바그다드의 종군기자’ 이진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취재 현장을 떠난 그가 홍보국장과 기획홍보본부장을 지내며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MBC 기자회는 홍보국장이던 이 전 사장을 제명했다. 기자회가 소속 회원을 제명한 일은 처음이었다.

기자회는 “기자 이진숙이 아닌 홍보국장 이진숙의 행위는 그가 한 때 기자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보도국 후배기자들이 MBC 뉴스의 공정성을 세우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제작거부에 나섰음에도, 회사 특보를 통해 음모론에 정치적 배후설까지 흘리며 기자회를 음해하는데 혈안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후 기획홍보본부장으로 승진한 이 전 사장은 같은해 10월 MBC 2대 주주인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 만나 MBC 지분 매각과 처분 방안 등 ‘MBC 민영화’를 논의해 논란이 일었다. 이 전 사장은 “이게 굉장히 정치적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그림은 좀 괜찮게 보일 필요는 있다”고 제안했다. 최 이사장은 “(MBC) 지분 30%를 정리해갖고 다음 정부에서 반값 등록금을 지원하는 장학금을 설치해서 학생을 돕는 게 낫지 않으냐”라고 했다.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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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사장은 ‘노조 불법감청’에도 연루됐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파업 도중 “회사가 직원들의 동의 없이 보안 프로그램 ‘트로이컷’을 설치해 개인 전자우편과 인터넷 메신저 내용을 들여다봤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조는 이 전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경영진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본부장으로서 ‘전원 구조’ 오보와 유가족을 폄훼한 보도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거셌다. 그러나 보도 경위를 밝히기 위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2015년 안광한 사장 시절 대전MBC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영상부를 폐지하고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을 편성, 사업국으로 보냈다. 지역과 전혀 무관한 중동 뉴스를 내보내 “방송을 사유화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아랍문화제, 앵커와 이라크 외무장관 간 대담을 보도했다. 2016년 3월 이 전 사장이 스스로 이집트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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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MBC본부 대전지부는 총파업 이전인 지난해 5월부터 이 사장 퇴진 운동을 벌였다. 김장겸 전 사장이 해임된 뒤에도 이 사장이 물러나지 않자 제작 거부를 이어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해 10월 이 전 사장을 국가정보원법·방송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대전MBC 노조는 이 전 사장이 사임한 8일 성명을 내고 “사필귀정, 인과응보”라며 “이제 자연인 이진숙은 대전MBC와 MBC의 명예를, 언론인의 명예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말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으라”고 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성명에서 “자신의 해임을 위한 주주총회 개최가 임박하자 돌연 사의를 밝혀 퇴직금을 챙길 수 있게 됐다. 그의 사임은 만시지탄이지만 끝까지 잇속을 챙기려는 치졸한 행태는 다시금 분노를 사고 있다”고 평했다.

이 전 사장이 사임한 다음날인 지난 9일 대전MBC ‘뉴스데스크’는 ‘퇴출 환영…공영방송 시민의 품으로’라는 리포트를 전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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