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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박종철 고문사망 첫 폭로 의사 오연상씨 “그런 사망 환자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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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영화 '1987' 중 의사 오연상 역의 이 나오는 장면. [사진 해당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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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1987’ 속 실존 인물인 오연상 원장이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무엇보다 23살짜리 학생이 뭔 나쁜 짓을 했다고 이렇게 고문을 해서 죽였나 싶었다. 그런 게 화가 났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의료인인 오 원장은 1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물고문을 직감한 후 기자들에게 ‘진실’을 알렸다. 인터뷰에 의하면 오 원장은 형사들의 안내를 받아 대공분실 9호실의 문을 연 순간, 오른쪽 낮은 평상에 속옷만 입은 채 누워 있는 박종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이 술을 많이 먹었는지 목이 탄다며 물을 달라고 해 주전자째 마시더니 호흡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는 형사들의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오 원장은 당시 경찰이 “사망진단서를 써달라”고 해 “‘사인 미상’으로 써줬다”고 했다. ‘사인 미상’이면 변사로 처리돼 검사한테 부검을 청하는 꼴이 되는데, 이후 이를 이상하게 여긴 기자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이 기자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였는데, 이를 통해 그 다음날 오전 30여명의 기자가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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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 사회면. 당시 신성호 기자가 쓴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2단 기사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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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능한 데까지 모두 말하자 생각했다. ‘물고문으로 사망했다’고 직접 얘기할 순 없으니 뭐든 물에 관한 얘기를 했다”고 했다. 이후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고 오 원장은 24시간 검찰 조사를 받고 다시 신길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16시간 동안 조사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오 원장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다”며 “그런 사망 환자는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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