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1 (토)

[데스크가만난사람①]'신과함께' 제작자 원동연 대표 "천 만 관객 후, 이창동 감독이 떠올랐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남혜연 대중문화부장]]“(흥행이)절실했고, 두렵기도 하고… 어떨떨해요.”

두 번 째 천만 축포를 터뜨린 제작자 원동연(54) 대표의 마음은 어떨까. 영화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기분좋은 듯 환하게 웃었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로 1231만 9542명의 관객을 모으며 ‘생애 첫 천만 영화’의 짜릿함을 맛본 그는 2018년의 첫 제작작인 영화 ‘신과함께-죄와벌’로 ‘쌍천만 제작자’에 이름을 올렸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내자 그는 “사실 좋기도 하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도 들더라”면서 “모든것이 운명같다. 조상의 은덕을 받은 건지, 운이 이렇게 받쳐주는 게 오히려 살짝 두렵기도 하다. 2편의 개봉이 남아있다. 그때 까지는 조용히 자축을 할 생각이다”고 했다.

‘쌍천만 제작자’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KBS1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 가끔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해 ‘배우’에도 이름을 올리는 재기발랄한 영화 제작자 원동연 대표를 만났다.

◇원동연 대표를 아십니까?
영화계에서 그의 입담은 꽤 유명하다. 그의 SNS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선하다. ‘50대 아저씨’라는 상상을 할 수 없다고 해야할까. 가끔은 어린이 처럼 투정을 부리다가도, 좋아하는 야구와 사람들에 얘기를 할 때는 마치 유쾌한 만화를 보듯 재미있게 표현을 한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방송에 출연중이며, 가끔은 영화에도 깜짝 출연한다. 호기심 많고, 엉뚱하기도 하며, 친근한 사람이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대표다.

‘영화 제작자’라고 하면 어린시절 부터 관심이 많거나, 전공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혹은 관련업을 하다 젊은 시절부터 영화계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원 대표는 “‘심사숙고하지 말자. 계획하지 말자’가 인생모토였다”면서 “할리우드 키즈도 아니고 어릴때 부터 주말의 명화를 보지도 않았다. 난 그때 AFKN에서 메이저리그를 봤다. 대학도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지만,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우연히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돈을 갖고 튀어라’ 였다. 뒤늦은 30대에 시작한 영화는 솔직히 운명이고, 인생이었다”고 설명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운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원대표 역시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면서 어느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신과함께~’라는 웹툰을 처음 마주했을 때, “바로 이거야!”라며 판권을 사들였다. 시나리오 탈고만 30번이 넘게 이뤄졌고, 김태용 감독에서 김용화 감독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6년의 시간이 걸려 ‘신과함께’는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노력과 끈기 여기에 운과 오랜 실력이 뒷받침 되며 지금의 자리가 오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너의 꿈 하나만을 위해 살아!”라는 말은 절대 못하겠다고 했다.

“절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에 목숨 걸었어요’ ‘영화 아니면 안되요’라는 꿈이 꼭 하나만 있으라는 법도 없다.누군가 갖고있는 꿈을 끝까지 지지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권유하고 싶지 않다. 예를들어 고시패스를 위해 50대 까지 공부만 했다고 생각해 보자. 잘되면 물론 좋겠지만, 청춘의 황금시기를 그냥 흘려 보내게 할 수는 없으니까.”

◇두 번 째 천만. 이창동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계획하고 의도되는 대로 되는 세상은 없어요. 운명적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침착했다. 샴페인을 들고 축포를 들 생각도 없다고 했다. 우선은 ‘신과함께’가 1, 2편으로 제작된 만큼, 올 상반기 개봉되는 2편이 잘되야 환하게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원동연 대표는 “(영화의 흥행이)절실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안됐으면 심각한 상황에 처했을 거다.(웃음) 전작인 영화 ‘대립군’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잘 안됐으면 더 이상 영화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면서 “이제는 희망이 생겼다.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고, 운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창동 감독님의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며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말했다.

원대표는 “노력은 모두 다 한다고 본다. 그런가운데 이창동 감독님의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삶았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적이 있다. 영화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 ‘좋은 영화는 만드는게 아니라, 만나는 거야’라고. 그 말씀을 듣고난뒤 여러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조금씩 생각도 바뀌게 됐다. 좋은 배우와 감독 그리고 파이낸싱 등 모든것을 다했다고 해도 ‘내가 만들었다고 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과함께’의 흥행에도 겸손했다. 처음 영화를 고사했던 김용화 감독이 다시 이 작품을 만든것도 운명이고, 한편으로 완성하려고 했던 게 두 편으로 나뉘었다. 예상하고 계획하려했던 게 다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모든힘이 다 모아져 1000만 관객이 된 것이다.

◇감독, 배우, 제작자 모든 것이 가능한 천의얼굴
“감독을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배우로 잘 어울리던데?” 가끔 이 재기발랄한 제작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미 몇 편의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을 했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재능이 있는터라 감독을 해도 제법 어울린다. 또 원래 꿈이 개그맨이었던 만큼, 연예인에도 도전해봤을 법 하기도 하다.

원동연 대표는 “사실 감독의 경우는 주위에서 말을 많이 해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마음속에는 ‘내가 신인감독보다 훨씬 경험도 많아. 못찍겠어?’라고 했다”면서 “그런데 나는 감독으로 전체를 조율하는 눈이 없다. 또 나는 조증이다. 굉장히 업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영화는 계속 신이 나다 끝날 것이다. 그래서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나는 관심사병이다.(웃음) 초면에도 농담을 한다. 절대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못 견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단역배우 원동연’에 대한 말도 덧붙였다. 그는 “나에게는 믿음이 하나 있다. 연기를 못해서 감독을 하고, 감독을 못해서 제작을 한다. 가장 힘든 일이 배우인 것 같다”면서 “능력이 있었으면 배우가 최고다. 그래서 이렇게 한을 푸는 것 같다. 나도 염치는 있어서 비중이 있는 역할을 절대 못한다. 내가 내 영화를 망치는 일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하기 잘 했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언제였냐”라는 질문에는 “좋아하는 영화가 직업이 되면 행복하기 힘들다. 직업이 되는 순간 고통이 더 많이 따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격은 게 있다. 딸 아이가 ‘아빠 영화 계속해’라고 했을 때 ‘난 영화가 운명이나 인생이 아니야’라고 했다”면서 “딸이 ‘우리 아빠가 영화 프로듀서야라고 말 할 때 제일 행복해’라는 말을 하더라. 딸이 아버지 원동연은 별로 존경하지 않아도, 프로듀서 아버지는 존경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 행복했다”며 딸바보의 면모를 보였다.

whice1@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