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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자살 주검 영상’으로 살펴본 1인 방송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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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인기 유튜버 도티의 구독자 수가 200만명을 넘기는 순간. 도티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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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튜브는 ‘따쳐필유화랴’하고 ‘우뱅’ 좋아하고요. 메이크업 영상은 ‘씬님’, 디아이와이(DIY)는 ‘밥팅’을 많이 봐요.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액체괴물 만드는 ‘뿌직’이에요.”

오타가 아닙니다. 1인 방송 소비 행태를 취재하기 위해 통화한 중학교 1학년 ㄱ(14)양의 말은 받아 적기도 버거웠습니다. 유튜브 채널인 ‘따쳐필유화랴’는 처음 들었을 때 중국어인 줄 알았을 정도니까요. ㄱ양은 씬님의 영상을 보며 화장을 배우고, 우뱅(우리빅뱅)에 가서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을 봅니다. 밥팅님으로부터 예쁜 다이어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심심할 때면 뿌직님이 액체괴물(끈적하고 말랑한 재질의 무정형 장난감)을 만드는 걸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 언급된 이름들은 전부 1인 방송 채널입니다.

안녕하세요.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한겨레>에 파견 와 있는 박세회입니다. 디지털에디터석에서 주로 국외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겨레> 독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1인 방송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ㄱ양은 왜 티브이(TV)를 안 보고 1인 방송을 볼까요? 이런 질문 자체가 티브이 세대가 가진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게임과 먹방을 주로 다루는 유튜버(유튜브 사용자) ‘선바’를 가장 자주 본다는 19살 ㄴ양은 “티브이는 방송 시간도 지켜야 하고 예능이라도 집중을 해야 재밌지만, 유튜브는 내가 원하는 아무 때나 그냥 틀어놓고 딴걸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게임, 미용, 요리, 먹방, 제품 리뷰, 유머, 교육·학습, 스포츠, 아동 등 수많은 카테고리의 1인 방송 진행자들이 24시간 시청자를 기다립니다.

1인 방송 진행자들은 이런 흐름의 원인으로 주류 미디어의 실패를 꼽습니다. 200만명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도티는 이라는 책에서 “10대들이 티브이를 보지 않는 이유는 주류 미디어가 10대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요 방송사 중에는 10대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무한도전>(문화방송)을 보는 동안 아이가 스마트폰을 잡고 거실 바닥에 누워 ‘대도서관’(게임 유튜버)의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습니다. 3040세대에겐 생소한 ‘대도서관’ ‘도티’ ‘밴쯔’ 등 유명 1인 방송 진행자들의 수익이 웬만한 티브이 스타 부럽지 않아서 일종의 소속사까지 생겼다는 건 조금 지난 이야기입니다.

1인 방송의 세계에도 위험이 존재합니다. 특히 충동적인 행동으로 주목 경쟁을 하는 진행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지난 12월엔 아프리카티브이의 한 진행자가 서울의 한 게이클럽에서 라이브 방송을 송출해 ‘강제 아우팅’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우팅’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지난여름에는 일부 진행자들이 동의를 받지 않고 해변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에게 접근해 근접 촬영한 영상을 방송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죠. 중국에서는 소위 ‘왕훙’(網紅·인터넷 스타)의 꿈을 품은 한 병원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장면을 인터넷 방송에 생중계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여성, 외국인을 향한 혐오 발언이 여과 없이 방송되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로건 폴이라는 미국 유튜버가 ‘자살 숲’이라 불리는 일본의 후지산 인근 아오키가하라 숲을 찾았다가 자살로 추정되는 주검을 발견하고 이를 촬영하고 방송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청소년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당사자가 하루 만에 사과하고 해당 영상을 삭제했지만, 비난의 화살은 플랫폼인 유튜브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하루 만에 영상이 삭제되기까지 650여만명이 이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유튜브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온라인 미디어 <버즈피드>는 5일(현지시각) ‘유튜브가 해당 영상을 살펴보고도 남겨뒀다’고 보도해 파장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문이 일면 이 파문에 대한 2차 영상들이 재생산되면서 더 많은 광고 수익이 유튜브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플랫폼의 사후 검열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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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회 디지털에디터석 콘텐츠기획팀 기자


그러나 콘텐츠 검열 의무를 전부 플랫폼에 맡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유튜브만 봐도, 세계적으로 1분에 약 400시간, 하루에 65년치 분량의 영상이 업로드됩니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라 주요 1인 방송 진행자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모든 콘텐츠를 모니터링할 순 없고, 사후 조처를 통해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면 좋을까요?

박세회 디지털에디터석 콘텐츠기획팀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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