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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허연의 책과 지성] 제임스 머리 (1837~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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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곤경에 처하다'라는 의미의 영어 표현 'in a pickle'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였다. 셰익스피어는 '폭풍우(The Tempest)'라는 작품에서 이 표현을 몇 차례 쓴다.

하지만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직접 만든 표현이 아니었다. 같은 의미의 네덜란드 속담 'in de pekel zitten'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같은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영어는 전형적인 혼혈 언어다. 대륙과 떨어진 변방의 섬이다 보니 고유의 말이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 말은 지금의 영어와는 너무도 달랐다. 지금의 영어는 유럽 대륙의 언어들이 몰려들어 탄생시킨 혼합물이다.

생각해보자. 1066년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이후 1399년 리처드 2세가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333년 동안 영국의 왕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학계나 종교계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라틴어를 사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세 이후 상인들은 네덜란드어와 스페인어를 들여와 사용했다. 'silk'처럼 중국어에서 온 단어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통일된 현대 영어를 최초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옥스퍼드 영어사전'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71년에 걸쳐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편찬한 수천 명의 참여자다. 더 좁혀 말하면 영어를 만든 일등공신은 최장수 편집장으로 사전 작업을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제임스 머리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1857년 그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편찬이 시작됐다. 하지만 작업은 20여 년 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게 된다. 이때 영국문헌학회장이었던 머리가 3대 편집장이 된다. 평소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집착이 강하고 따지기 좋아했던 그가 작업에 뛰어들면서 사전 편찬은 급물살을 탄다. 이후 30여 년 동안 머리는 1500명이 넘는 작업자를 통솔해 사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총 41만개 어휘와 180만개 예문이 담긴 사전의 초판본은 그의 작품이었다.

머리는 작업이 난관에 맞닥뜨릴 때마다 후원자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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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상적인 사전의 완성을 정말 보고 싶습니다. 이상적인 사전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머리는 독특한 집필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것이 영어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역사적 원리와 예문을 기초로 어휘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한 단어의 세세한 의미와 철자, 발음이 수세기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했다. 그리고 주관성을 배제한 채 철저히 예문과 용례를 통해 단어의 뜻을 정리해 나갔다. 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보탰다.

자원봉사자 중 가장 많은 어휘와 예문을 보내온 사람은 W C 마이너였다. 1만여 개가 넘는 단어와 예문을 보내온 그는 정신병원에 수용된 미국 출신의 살인범이었다. 예일대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정신병에 걸려 살인을 하고 수용소에 감금된 기구한 사나이였다. 어쨌든 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 됐다. 훗날 호사가들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머리와 마이너라는 두 광인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머리의 사전에 대한 애정은 숭고했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명성을 얻은 다음에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무명인사입니다. 메아리나 무리수(無理數)로 취급하던가 아예 무시하시고 사전만 기억해 주십시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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