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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성직자 명품차 웬말" "독재자에 죽음을" 구호로 본 이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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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신권정치 정면도전…"이면에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

"실정과 부패·높은 실업과 물가·상대적 빈곤에 정부 비판"

연합뉴스

이란 반정부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격렬해진 이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외치는 구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위의 정확한 성격이나 소규모 시위가 갑작스럽게 반정부 시위, 폭동으로 확산한 까닭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영국 가디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을 보면 시위대는 이란의 존립 기반인 신권정치(신정)에 도전하는 민감한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이들은 "우리는 이슬람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돌아버리게 할 핑계로 이슬람을 이용하고 있다"는 구호도 선보였다.

다른 한편에서 시위대는 이란이 내부에 산적한 문제보다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다툼에 몰두하는 현실에까지 비판을 가했다.

이런 부류의 입에서는 "시리아는 버려두고, 우리를 생각하라", "나는 가자나 레바논이 아닌 이란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라는 구호가 나왔다.

외신들은 이번 이란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이 치솟는 실업률과 물가, 주요국들과의 핵합의로 경제제재가 해제됐음에도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데 대한 실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만족스럽지 않다가 보니 그간 누적된 신권정치에 대한 불만이 폭증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AFP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이란 시위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와 깊숙이 연관돼 있으며 당국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 실패하자 대중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발 더 나아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통치해온 이슬람 신권정치가 누적된 실정과 부패로 정통성을 잃었다는 과감한 주장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다수 언론들은 WSJ 주장처럼 시위가 이란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까지 심각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다.

유럽-이란 비즈니스 포럼 창립자이자 분석가인 에스판디야르 바타마겔리지는 "이란 사람들을 지속해서 거리로 부른 것은 직업 부족으로 인한 좌절,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평범한 경제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위대 구호 가운데 "우리는 점점 가난해지는데 성직자들은 명품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말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사회 지도층의 실정에 대한 불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 상대적 빈곤에 대한 분노를 함축하는 슬로건으로 풀이된다.

구호 중에는 "우리는 아리아 인종이며, 아랍을 섬기지 않는다"와 같이 민족주의 정서나 과거 왕정을 지지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구호도 일부 등장했다.

또한 가택 연금 상태인 미르호세인 무사비와 메디 카루비 등 야당 지도자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왔다.

AFP는 시위대의 모든 목소리가 넓은 의미의 부패, 소수 엘리트에게 막대한 부가 쏠리도록 조작된 시스템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시민의 자유가 억압을 받아 불평을 털어놓을 공간마저 부족했던 환경 속에서 시위가 반정부 성격을 띠게 됐다고 해설했다.

이란 정부는 이날 시위를 '물가 시위'로 규정, 일단 전문가들의 여러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란 내에서도 최소한 대중의 언로는 보장돼야 불만 표출이 반정부 시위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파인 전투성직자협회(CCA)의 대변인 골람레자 메스바히 모가담은 이란 ISN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헌법은 시위권을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당국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하며 언론도 시위를 보도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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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정부 시위
[AP=연합뉴스]



gogo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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