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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분리 실시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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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개헌 방식을 두고 청와대, 여당과 자유한국당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개헌 의원총회에서 “주권재민의 정신을 어떻게 헌법에 반영할 것인가 하나씩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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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슬금슬금 나오는 정치권의 단어가 있다. ‘개헌’이다.

개헌은 여야 모두 공감하는데, 국민투표 시기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자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분리해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이견 때문에 개헌을 다룰 국회 개헌특위와 정개특위 활동이 연장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현재 정치개혁특위는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시 여부를 두고 논쟁 중이며, 개헌특위는 권력구조를 두고 여야 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이런 특위들은 기한이 연장돼야 할 뿐 아니라, 두 개 특위가 서로 연계해 활동하는 것이 맞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된 의미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의 문제와 연계해서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는 특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와, 제대로 된 개헌 논의를 위해 두 개의 특위 활동을 연계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여야가 개헌 국민투표 시기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이런 문제들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회 차원에서 국민투표 시기 접점을 찾지 못하면, 청와대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 같다.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휘하면 청와대와 여당 의중이 그대로 반영된 개헌안을 부담 없이 발의할 수 있다. 두 번째, 개헌안을 대통령이 발의했다 국회에서 부결된다면 공약을 지키려 했는데 야당 방해로 무산됐음을 부각시키며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에서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략도 가능해진다. 세 번째, 개헌이라는 어젠다를 선점함으로써 야당의 전략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당의 판단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첫째, 모처럼 하는 개헌을 대통령과 여당 생각대로 몰아가는 것은 개헌 취지와 맞지 않는다. 개헌을 하려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는 다수결의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보다는, 소수 의견을 되도록 많이 제도권 결론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과 여당이 단독으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아무리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높다 치더라도, 이들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소통을 중시한다면 그 소통을 지금과 같은 정국에서도 금과옥조로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소수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의견을 어떻게든 반영하려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주의다.

더구나 개헌과 같은 대한민국 백년지대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자신들이 옳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지나쳐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독선이자 착각이다. 정치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도 아니고 정의와 부정의의 충돌도 아니며, 진리와 거짓의 투쟁도 아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나 여당이 단독으로 개헌안을 발의해서는 안 된다.

이런 당위론에서 출발하면 지금 청와대와 여당은 대통령 법안 발의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의 주장도 심각히 생각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점이 도출된다. 새해 지방선거와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논리다.

시간이 부족한 것은 맞다. 개헌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서는 곤란하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기보다는 지방선거 때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지 말고 좀 연기하는 것이 낫다. 시한을 미리 정해놓고 시간이 없다 하기보다 개헌 논의를 위한 시한을 늘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헌을 위해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다. 그래도 그 당위성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개헌에 포함될 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번 개헌에 청와대와 정부가 집어넣고 싶어 하는 내용은 대략 지방분권 강화와 기본권 확대에 대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별로 없다. 헌법은 방향성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 내용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어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정도의 선언적 내용을 대통령과 여당이 단독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추상성에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의 내용에 대한 합의가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가 갖는 폐해를 줄이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정부에 대한 선택권도 확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권력구조 논의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권력구조에 대한 다양한 장단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이런 시간을 주지 않고 개헌안을 밀어붙인다면 본인들 주장의 당위성, 즉 민주주의의 강화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국회에서 합의를 도출할 때까지, 국민에게 충분한 권력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떻게든 여야 간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민주주의란 결코 효율적인 제도가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거나 여소야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하는,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논리에 익숙하다. 이는 잘못된 말이다. 효율성보다는 효과적 결론 도출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제도다. 이견이 있으면 상대방을 설득하고, 설득이 안 되면 서로 양보해서 타협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시점에서 개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청와대와 여당의 민주적인 마음가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 번째 문제점을 말하고자 한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분리해서 실시하자는 주장을 단순히 정치공학적 주장이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자유한국당 역시 정략적으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분리 실시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략적이라고 해서 틀렸다고 보기는 무리다.

청와대와 여당이 두 종류의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개헌 관련 국민투표와 같이 전국적인 투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13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절약을 생각한다면 두 종류의 선거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개헌은 비용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단순히 4년 혹은 5년 임기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것이 개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절약도 하고 국민투표도 성공적으로 잘할 수 있으면 문제가 다르다. 하지만 두 가지 선거가 동시에 실시될 경우, 일반적으로 하나의 선거가 다른 투표를 잡아먹거나, 아니면 개헌 국민투표가 지방선거를 잡아먹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다. 지방선거 분위기 때문에 개헌이라는 이슈가 상대적으로 가려진 채 투표가 치러져, 지방선거에 유리한 정파가 주장하는 개헌안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되거나 반대로 개헌안에 대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입장을 가진 정파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를 결정할 개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나오기 힘들어진다.F 때문에 두 종류의 투표를 분리해 실시하자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0호 (2018.1.37~2018.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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