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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종교인 과세]종교활동비 규모·내역 등 ‘셀프 신고’…과세, 시늉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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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활동비 무제한 비과세와 세무조사 면제는 과도한 특혜라며 종교인과세안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정부는 끝내 외면했다.

기획재정부는 21일 단 한 가지 조항만 바꾼 소득세법 시행령 수정안을 공개하면서 사실상 종교인과세 방안을 마무리했다. 손댄 조항도 종교활동비가 종교인의 통장으로 지급될 경우에 종교활동비 규모를 국세청에 신고하라는 것으로 핵심도 아니었다. 그나마 법인카드로 종교활동비를 썼을 경우에는 사용액을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불투명성에 있어 국가정보원 등이 사용한 특별활동비에 버금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1968년 처음 논의된 이후 50년 만인 내년에 종교인과세가 시행되지만 특혜 시비로 얼룩진 채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종교인이 종교단체로부터 종교활동에 사용할 목적으로 받는 돈은 무제한 비과세된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증빙한 경우 비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기독교계 등이 강하게 요구하면서 바뀌었다. 종교활동비는 종교단체 의결기구 또는 종교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장로회나 특정 교회에서 종교활동비라고 규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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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세되는 종교활동비 규모와 내역을 알 수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종교단체 회계와 종교인 회계를 별도로 작성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종교단체 회계는 아예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했다. 볼 수 있는 것은 종교인 회계다. 그러니까 교회 장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목사 장부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종교활동비를 목사의 통장으로 지급할 경우에는 종교활동비 지급액을 과세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면 신고할 의무가 없다. 법인카드는 종교단체 회계에 속하기 때문에 설사 과세당국이 이상하다고 여겨도 들여다볼 수 없다. 교회나 사찰이 신고한 대로 과세당국은 종교활동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납세자가 자신이 낼 세금을 규정하고, 세금 규모도 얼마인지를 결정하는 ‘셀프 납세’ 형태로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이 세무업계 지적이다.

세무조사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교회나 사찰 세무조사는 원천금지됐다. 목사나 스님에 대한 개인 세무조사는 가능하지만 이때도 국세청은 사전고지를 해야 한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전에 “이런저런 세금을 적게 낸 것 같으니 확인하고 다시 내달라”고 의무적으로 수정신고를 우선 안내해야 한다. 탈세 의혹 제보를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목사나 스님이 이후 탈루한 세금을 내면 세무조사를 할 수 없다.

종교인들이 소득신고 때 근로소득 또는 기타소득(종교인 소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일반납세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배려다.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면 경비를 최대 80%까지 인정해줘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원천징수액 기준으로 연 4000만원(4인 가구, 20세 이하 2자녀)을 버는 일반인은 매달 2만6740원을 근로소득세로 내지만 종교인은 월 1220원을 내도록 설계됐다. 세금은 적게 내지만 국회는 입법을 통해 근로·자녀장려금은 타 가도록 허용했다. 저소득 근로가구에 지급하는 근로·자녀장려금은 근로소득자만 받을 수 있지만 종교인은 기타소득으로 신고해도 지급받을 수 있다. 종교인 소득과세가 내년 시행되면 연 1000억원의 세수가 들어오지만 7000억원의 근로·자녀장려금이 나간다고 추정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깎아준 종교인의 세금은 일반인의 소득세와 기업의 법인세로 메꿔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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