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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79] 한 처량한 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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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조선일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망할 놈의 집에선 쉰 밥을 주는구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쏜가/ 내 집에 돌아가 선밥 먹음만 못하리). 약관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조부가 역적이었음을 알고 벼슬을 포기하고 일생 방랑 시인으로 살았던 김삿갓이 과객으로 푸대접받으며 읊은 말장난 시이다.

이문열은 작품집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 실린 단편 '과객'(過客)에서 조선시대 과객들이 남의 집 밥이나 축내는 '고급 거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 밖으로 밀려난 지식인이나 예인 등으로, 그들은 통신망이 부족했던 시대에 다른 지역의 정보 전달자였고 나아가 광역적 여론 조성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반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혜택에 대한 약간의 보상 심리에서, 그리고 그들을 홀대했을 때 얻게 될 나쁜 평판이 두려워 과객에게 숙식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고 없이 나타나는 과객은 부담이 아닐 수 없고, 그래서 빈약한 상차림을 '과객상'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 뉴스를 보다가 한국 대통령이 국빈으로 중국에 가서 과객 대접도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박 4일 체류 중 딱 두 끼를 제공했다니 그것이 국빈 대접인가. 온 국민이 대통령과 함께 갑자기 밥을 구걸하는 신세가 된 듯하다. 게다가 수행 기자까지 흉악한 폭행을 당했으니 중국이 한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것인가 죄인으로 소환한 것인가.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 한 현지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요우티아오), 두유(도우지앙)을 주문해 식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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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받은 홀대는 온 국민이 통분할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중국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버리고 대중(對中) 굴욕 외교를 마감하게 된다면 아프지만 맞을 만한 주사라고 자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와신상담하며 국민이 받은 모욕을 설욕해야 한다. 아직도 중국을 감싸며 자신이 받은 모욕을 덮기 위해 중국을 옹호하려 한다면 국민 상처에 소금을 이겨 넣는 일이다.

모택동은 절대 빈곤 속의 무지한 백성을 다스렸기에 죽을 때까지 절대 권력을 누렸지만 시진핑이 절대자로 군림하기엔 중국의 민도가 높아졌고 누적된 내적 모순과 갈등이 극심하다. 동네 장승을 미륵불인 줄 알고 치성드리는 우(愚)는 이제 그만!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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