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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유레카] 유스퀘이크 / 임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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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틀스의 첫 엘피(LP) 앨범이 나왔다. 17살 에릭 클랩턴이 예술학교를 때려치우고 클럽 공연에 나섰다. 16살 엘턴 존은 낮엔 런던왕립학교에서 쇼팽을 연주하고 밤엔 클럽에서 노래했다.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미니스커트를 창시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금서 목록에서 제외됐다. 1963년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젊은이들이 열정과 자유를 분출했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보그>의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런드는 ‘유스퀘이크(youthquake)의 해’라고 명명했다. ‘젊음’(youth)이 ‘지진’(earthquake)처럼 세상을 뒤흔든 해였다.(<1963 발칙한 혁명>, 예문사)

한겨레

1963년 영국에서 발매된 비틀스의 첫 앨범 <플리즈 플리즈 미>. 단 하루, 겨우 세 번의 녹음 만에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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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7년의 단어로 ‘유스퀘이크’를 선정했다. 54년 만의 ‘리바이벌’이다. ‘젊음의 힘’은 그때와 같지만 맥락은 다르다. 과거엔 젊은이들이 주도한 대중음악, 패션, 사고방식의 변화를 뜻했는데, 이번엔 젊은이들이 촉발한 정치 변화에 주목한다. 6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참패하고 노동당이 약진했는데, 청년 표가 결정적이었다. 뉴질랜드에선 37살 여성 저신다 아던이 총리가 됐다. 젊은층의 정치적 힘과 영향력을 더는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됐다.

일자리 없는 중동·북아프리카의 청년들이 2010~2011년 이슬람권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는데, 이를 유스퀘이크라 표현했다. 재앙이 돼버린 청년 문제를 유스퀘이크라 일컫기도 한다. 1963년엔 열정과 희망에 넘친 청년들이 세상을 바꿨고, 2017년엔 불안과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헬조선’, ‘엔포세대’, ‘이생망’은 이대론 못 살겠다고 젊은 세대가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다. 그 속엔 불안과 상실, 분노가 담겨 있고, 다가올 위기의 징후를 뿜어낸다. 이들이 ‘한국판 유스퀘이크’를 선보이며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나서고 있다. 어쩌면 유스퀘이크는 지금, 한국에서 더욱 의미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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