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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물가안정이라고?]③시장 상인들 "망하기 직전…고물가에 한파까지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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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보다 혹독한 연말…상인들 "매출 30~40% 감소"

"시장통도 물가안정 안 믿어"

[편집자주] 최근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보다 1.3%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연중 최저수준 상승률'로 '물가가 안정됐다'는 숱한 분석의 배경이 됐다. 그러나 물가가 안정됐다는 분석에 동의하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 마트와 전통시장 현장에서 만난 주부들은 "고기·생선·공산품 물가는 오히려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인 주부는 "도쿄보다 서울 물가가 더 비싸다"고 말했다. <뉴스1>이 체감 물가를 주도하는 주요 농축수산물 가격을 실제 비교한 결과는 주부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준다. 올해 유난히 추운 연말을 보내는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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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송파구 B전통시장 내 수산물 매장에서 상인이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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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물가안정입니까? 날까지 추워지니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송파구 방이동 B전통시장 상인들은 한파보다 더 혹독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상인들은 난롯불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날씨보다 더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추위에 종종걸음을 하는 40~50대 여성 소비자가 눈에 띄었으나 '한가득' 쇼핑을 하는 경우는 보이지 않았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년의 여성이 우유 두 팩이 든 비닐 주머니를 들고 시장통을 걸었다. 오리털 소재 외투를 입은 20대 남성이 시장 한복판에서 입김을 내며 "바나나 한 손(한 묶음)에 1000원"이라고 외쳤으나 눈길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갈치·고등어·새우·조개·오징어 등 수산물을 파는 홍모(51)씨는 매장 바깥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중년의 여성이 매장 앞에 발길을 멈추자 전화를 끊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여성이 "다음에 사겠다"고 하자 홍씨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홍씨는 가격 폭등으로 이른바 '금징어(금과 오징어 합성어)'가 된 물오징어 두 마리를 9000원 정도에 팔고 있었다. 작년 이 맘때보다 20~30% 비싼 가격이다. 갈치 한 마리(350~400g) 값은 1만8000~2만원으로 작년보다 소폭 비싸졌다.

홍씨는 "내 아이부터가 국산 수산물을 좋아하는데 손님에게 외국산을 팔 수 없다"면서도 "손님들이 외국산보다 비싼 국산 가격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쉬는 날은 오직 내가 아픈 날"이라며 하루 12시간씩 일한다는 홍씨는 "경기침체와 소비위축 등 여파로 매장 매출이 작년보다 30~40% 줄었다"고 토로했다.

뉴스1

서울 송파구의 다른 한 시장.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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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매장을 하는 강모(50)씨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얀색 앞치마를 두른 그는 기자가 '오늘 좀 파셨냐'고 묻자 진열대에 놓인 붉은색 한우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거의 팔지 못 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강씨는 1등급 한우 등심(100g)을 약 9000원에 팔았는데 이는 지난해 12월보다 10% 이상 비싼 가격이다. '비주력 상품'인 수입갈비 1근(600g) 가격도 작년보다 10%가량 올라 1만6800원에 판매됐다.

강씨는 "한우 가격이 도대체 왜 올랐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20년 이상 한우매장을 운영했지만 요즘처럼 품질이 떨어진 한우는 없었다. 그런데도 경매시장에서 한우를 가져오는 값 자체가 비싸 소매가격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건어물 매장 상인들도 '물가안정'을 체감하지 못 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50대 여성 상인 A씨는 "황태·마른오징어·조미김 등 가격이 20~100% 올랐다"며 "시장통 상인들은 도매가 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 망하기 직전이라는데 도대체 왜 물가안정 소리가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격을 대폭 내려도 손님들이 체감하지 못해 고민에 빠진 상인도 있었다. 상인 한모(55)씨는 바나나 한 묶음을 1000원, 귤 5kg 8000원, 계란(왕란) 30알 5000원에 팔았다.

한씨는 "우리보다 싸게 파는 집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손님이 있어야 물가안정을 느끼지 않겠느냐. 2~3년 전만 해도 이 시간대에 여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다른 사업을 하다가 5년 전 전통시장에 안착했다"며 "갈수록 안 좋았지만 올해는 정말 최악"이라고 덧붙였다.

시장통에서 만난 소비자 대부분도 물가안정을 '다른 나라 얘기'처럼 느꼈다. 이날 돼지고기·감자·호박 등을 구입한 오모(여·55)씨는 "삼겹살 값이 비싸 '목살 갈은 고기'를 샀는데도 오늘 쇼핑하는 데 5만5000원이 들었다"며 "작년이었으면 5만 이하에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정부가 물가 조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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