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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트래픽 유발자 돈 더내야” vs “스타트업 싹 자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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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망중립성 폐기’ 국내 논란 재점화

동아일보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 폐기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훼손될 것이다.”(한국인터넷기업협회)

“국내 망 중립성 논의 초기에는 통신사가 포털과 유사한 서비스를 하고 있어 경쟁 서비스 차별 가능성이 문제됐지만 현재는 모두 접었다. 망 중립성 완화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통신업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14일(현지 시간)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결정한 이후 국내 통신·인터넷 환경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사 등 네트워크사업자가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정부와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망 중립성 폐기가 당장 국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현재로선 이번 결정을 글로벌 트렌드라기보다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변화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대근 잉카리서치앤컨설팅 대표도 “별도의 법체계로 망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과는 규제 환경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들은 미국의 이번 결정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이다. 17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FCC의 결정이 인터넷기업 혁신과 스타트업 의지를 꺾어 인터넷 생태계 전반을 위협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 주장에는 글로벌 인터넷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정책을 무시 못 할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를 미리 견제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 200여 곳이 속한 단체로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협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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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통신사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망 중립성 논의가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통신업체들은 현재 인터넷 포털을 함께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자사 서비스에 유리하게 네트워크 운영을 차별화할 것이라는 과거의 우려를 벗었다는 입장이다. 최근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국내 통신사 간 역차별 문제가 불거진 것도 망 중립성 논의를 부추기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에 대한 국내 이용자가 계속 늘어나고 트래픽양이 폭증하면서 사용량에 따른 합리적인 과금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당장에는 미국의 결정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국 정부는 2011년 가이드라인 형태의 망 중립성 지침을 시행한 이후 올 8월부터 망 중립성 강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자 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을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 접속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는 문재인 정부는 망 중립성을 강화하는 기조로, 미국 상황과 정반대의 노선을 가고 있다.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현재 무료로 제공되는 동영상 플랫폼 등이 유료로 전환되거나 속도가 느려지는 등 서비스 차별이 발생하고,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자리 잡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미국의 정책 노선에 발맞추기가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더구나 이번 결정이 미국 내에서도 큰 반발에 맞닥뜨렸다는 점도 미국 노선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FCC 결정에 넷플릭스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소송 불사 방침을 확인했고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타클래라 카운티 등 일부 지역에서는 FCC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법적대응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여기에 통신사들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규제가 강한 국내 상황도 망 중립성에 관한 논의를 잠잠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통신업체들은 5세대(5G) 통신망 투자를 앞두고 망 중립성 완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없지 않다. 국회에서도 최근 망중립성 원칙을 둘러싼 견해 대립이 첨예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낸 망중립성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같은 당 변재일 의원은 “국외 기업의 무임승차가 지속되면 네트워크 사업자의 투자 의지를 저해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망중립성 원칙은 과거 국가 주도로 구축한 인프라에는 적합했지만 5G 시대에서는 과거 지향적”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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