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 차창룡(1966~ )
고행은 육체의 고통을 견뎌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수행이다.
몸을 괴롭게 하여 마음에 매달린 온갖 애착과 욕망을 끊어버리는 수행이다. 시인은 그 수행의 본보기를 겨울나무에게서 본다.
톱질 몇 번이면 쉽게 넘어가는 나무. 한 발짝도 움직일 줄 모르는 나무. 땔감이 되든 의자가 되든 사람이 가공하는 대로 물건이 되는 나무. 그 힘없고 하찮은 나무가 맨몸 하나로 강추위에 맞서고 있다. 찬바람 눈보라를 제 몸에 깊이 새기고 있다. 가혹한 추위를 꽃과 열매와 향기로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나무는 해마다 고통이 어떻게 희망으로 바뀌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수행의 경전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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