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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혁신성장 외치며 규제완화는 뒷전…한국경제 발목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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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경제진단 토론회 / 기업·산업정책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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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혁신성장을 말하면서 시그널은 거꾸로 주고 있다. 산업정책이 실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생겨난 결과다."

경제진단 대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현 정부의 산업정책이 문재인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에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부진한 규제완화를 서둘러 이행해 혁신을 견인할 기업투자를 유도해야 할 시기인데, 이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나오면서 시장에 '시그널링 혼선'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 혼선을 주는 대표적인 시그널로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꼽았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은 '부자증세' 프레임으로 묶인 결과"라며 "이번 법인세 인상을 적용받는 기업이 77곳에 불과하다 보니 국회의원이나 일반 국민 입장에서 '돈 잘 버는 대기업들이 세금 좀 더 내야지'라는 정서가 컸다"고 밝혔다.

그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최순실 사태로 인한 정경유착 이슈로 반대 입장을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다른 나라들은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펴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법인세 인상 관련)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 법인세 정책 원인을 '실리를 지배한 정치논리'의 개입에서 찾았다. 박 교수는 "정부가 진정 서민과 세수(稅收)를 걱정한다면 실리적인 측면을 봐야 하는데, 정치논리가 지배하다 보니 골병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를 올리거나 내린 나라들을 구분해보면 한국이 어느 그룹에 속하는 게 맞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방향으로 갈 수는 없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최고세율을 20%로 낮추면 오히려 세원이 더 넓어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된 사안"이라며 "문제는 대기업을 혼내야 한다는 국민정서가 주를 이뤘고, 그동안 잘못한 게 많은 대기업 입장에선 그 반박을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은 "세율을 100만큼 올리면 기업이 75% 정도의 부담을 지고, 나머지 25%는 소비자와 근로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도 고려했어야 했다"며 "개인적으로 소득세 인상은 지지하면서도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기업에도 법인세 인상은 부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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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학회장은 "법인세 인상론자들은 법정세율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근거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데, 외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결정할 때 실효세율을 계산하고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법인세 인상에 따른 외국인 투자 감소를 우려했다. 박 교수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던 기업이 인근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리를 망각한 정치논리의 지배는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성장을 이끌어낼 서비스산업에서의 규제완화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장 직무대행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는 특히 서비스산업에서의 규제완화가 절실한데,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단체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면 이걸 뚫고 나가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예로 들며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계속되는 한 신산업 발굴은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금융서비스 같은 경우 점점 국제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인터넷은행 하나도 은산분리 규제에 막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자주 논하면서 해당 분야 규제를 안 풀어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거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동차가 주행하려면 50m 앞에 기수가 빨간 깃발을 들고 앞서 걸어 가야 했던 당시의 규제를 언급하면서 "마차 주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범했던 우를 우리가 현재 재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도 업종별 전망과 관련해서는 올해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한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출이 내년에도 호황을 보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올해 반도체 수출(1~11월 기준)은 작년보다 56.6% 늘어난 883억달러를 기록하면서 3년 만에 1조달러 연간 무역액 달성을 이끌었다.

반면 조선과 건설 분야는 내년에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원장은 "주로 ICT 분야로 대표되는 수출업종과 조선·건설 등 내수업종 간 명암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내수업종 종사자나 일반 서민들 입장에선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기존 수출 효자 업종의 호황도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원장은 "2019년부터는 중국도 웬만한 반도체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공급과잉, 경쟁 심화로 현재의 반도체산업 호황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올해 전체 수출 증가율은 15.7%이지만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제외하면 8% 이하로 떨어진다"며 "특정 산업에 편중된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지지부진한 규제완화를 적극 시행에 옮겨 내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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