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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배부르고 등 따시니 ‘발길질’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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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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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꿈이라도 꾸는지, 무거운 다리로 라미를 툭툭 차며 떡실신 중인 보들이.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13. 전기방석에 빠지다

다시 겨울이 왔다. 라미와 보들이는 이제 더 이상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눕지 않는다. 날씨 탓인지 좀 차분해진 것 같기도 하다. 햇빛을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 사람이든 고양이든 여름보다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겨울을 대비해 털을 두툼하게 찌운 보들이는 집사의 무릎 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중성화 수술 이후 집사의 무릎을 떠났던 보들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보들이가 냥춘기라 더욱 집사와 내외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더웠던 거다.

집사가 없을 때 무릎 역할을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난겨울 보들이가 왔을 때쯤 장만한 1인용 전기방석은 이제 라미나 보들이 한 마리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새 라미는 길어졌고 보들이는 넓어졌다. 방석 밖으로 삐져나온 라미의 발이 추워 보였다.

이참에 라미와 보들이는 물론이고 내 엉덩이까지 뜨끈하게 데워줄 방석을 찾았다. 라미와 보들이가 사는 마루의 평균 온도는 영상 18도 안팎. 큰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오는 한낮엔 딱히 보일러를 데우지 않아도 20도를 훌쩍 넘었다. 반면 큰 창문은 밤엔 빠르게 실내 온도를 떨어뜨렸다. 보일러만으로 실내 온도를 적정 온도로 맞추기엔 난방비 감당이 어려웠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달기도 어려웠다. 라미한테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소파 크기에 맞춰 만들어진 3인용 전기방석이 적당했다. 2만원 언저리의 제품을 샀다가 밤새 틀어도 뜨끈해지지 않기에 반품하고 5만원대 물건을 샀다. 역시 비싼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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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숨집에 누워 멍때리는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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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용 방석을 사고 가장 좋았던 건 예상대로 보들이-라미-집사 순으로 눕거나 앉아 동시에 엉덩이를 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보들이는 방석 위에서 긴 낮잠을 잔다. 그 옆에 내가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노트북을 켠다. 그러면 ‘뭐 먹을 거 더 없냐’며 보채던 라미도 나와 보들이 사이에 슬그머니 앉아 식빵을 굽는다. 무슨 반려동물 공익광고 같겠지만, 라미와 보들이네의 흔한 일요일 오후 풍경이다. 3인용 방석이 가져다준 ‘따뜻한 순간’이다.

보들이가 전기방석에 ‘홀릭’하면서 라미가 슬슬 밀려나기 시작한 점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보들이는 아주 짧은 시간을 자더라도 거의 떡실신을 하며 세상 모르고 자는데 자는 도중 기지개를 켠다고 쭉 뻗은 뒷다리가 식빵을 굽던 라미를 밀치는 일이 잦았다. 나이가 들면서 덩치에서도 식욕에서도 레슬링에서도 점점 동생에게 밀리는 라미는 착해서인지 쫄아서인지 보들이가 발로 차도 당하기만 했다. 둘의 모습이 폭군 집주인과 무기력한 세입자 같았다.

대신 라미에겐 지난겨울엔 없던 ‘숨숨집’이 새로 생겼다. 1인용 전기방석 시절, 방석을 애용하지 않는 듯한 보들이를 위해 마련한, ‘다○○’에서 산 5000원짜리 하우스였다. 안타깝게도 보들인 좀처럼 지붕이 있는 곳엔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라미의 독차지가 되었는데 이게 전기방석과 결합하면서 훌륭한 온돌방이 됐다. 얼마나 안락하고 좋은지 안에 드러누워 ‘멍’을 때리는 장면이 여러번 목격되기도 했다.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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