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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삶의 창]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 나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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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요즘 한국민속촌이 인기다. 10여년 전에 외국인들과 찾아갔다가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던 한국민속촌이었다. 예전에 민속촌에 가면 초가집에 옛날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전통주 팔던 주막집이 전부였다. 그러나 요즘 민속촌에는 ‘작명가’, ‘체육관 선배’ 등 다양한 테마들과 전시 공연이 꽉 차 있다.

갈수록 젊은층이 많이 찾고 초등학생이 민속촌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글들을 본다. 1년에 한 번 하는 인턴 및 신입사원 모집에도 사람들이 떼구름같이 몰린다. 올해 재현배우 모집 경쟁률이 23 대 1이라고 하니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민속촌 인기가 높게 된 것은 2012년 봄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축제 ‘웰컴 투 조선!’을 선보이면서부터다. 해마다 학교를 휴학해서라도 민속촌 재현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들, 이제 놀이가 곧 생산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리는 대안관광 국제회의에 참여했다.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하니 호주에서 온 나이 많은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 나온 대만 청년을 따라서 2시간여 버스를 달려 타이중에 도착했다.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우리는 대만에서도 유명한 찻집에 들어갔다. 대만 청년은 고소득 일자리를 그만두고 몇해 전부터 기독교청년단체 해외봉사 여행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다. 급여가 예전보다 못할 텐데 만족하냐고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서 좋단다. 호주에서 온 선배도 요즘 호주 청년들도 돈 많이 버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정시 퇴근 후에 여가의 시간을 갖는 것을 최고로 생각한단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청년들의 일자리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게 바뀌고 있는 듯하다.

어느 여성 사회학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가 20대 여성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왜 처음부터 그런 직장과 결혼 생활을 했느냐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해갈 것이 예상되고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여가문화가 곧 일자리이자 자기욕구를 실현할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근무 형태와 조건으로 새로운 일자리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높은 임금이 자신의 소중한 삶을 소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한다.

미국의 인본주의 심리학을 주도했던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일찌감치 5단계 욕구 단계설을 내놓았다. 인간은 1단계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2단계 안전 욕구, 3단계 이성간의 교제나 결혼을 갈구하는 소속감과 애정 욕구, 4단계 집단 내에서 어떤 지위를 확보하려는 외적 존경 욕구 그리고 마지막 5단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거나 자기계발을 계속하고 싶은 “자아실현 욕구”에 이른다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20대가 되면서 새로운 이상과 가치 실현이 곧 삶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과 집을 마련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자신의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우선순위를 바꾸는 시도를 한다. 최근에 만난 관광학 교수는 과거의 생계형 일자리에 못지않게 “여가 문화형 일자리”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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