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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2]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우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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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봄 : 사랑의 시작
신중현의 뮤즈로 알려진 김추자. 한 명의 여신이 더 있다. 김정미. 영국의 영화감독 리처드 아요아데(Richard Ayoade)가 2013년에 만든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The Double)>(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각색한 영화로 제시 아이젠버그(Jesse Eisenberg)가 주연을 맡았다)의 엔딩 곡으로 김정미의 <햇님>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1977년생 영국 영화감독이 우리가 모르는 김정미를 어떻게 알았을까? 김정미를 4년 전에 제자 호석이가 소개해서 알게 되었다. 김정미의 1973년 앨범 첫 곡이 <햇님>이다.

김정미의 노래는 몽환적이다. 바삭거리는 듯한 그녀의 가볍고 얇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 끝을 강하게 잡아채는 비음을 두고 ‘싸이키델릭(psychedelic)’하다고 말해도 좋다. “보이지 않는 바람”(<바람>)처럼 다가오는 기타는 그녀 뒤에 숨어 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감동에 젖게 하고,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 참으로 멋진 일이다. “어데로 가고 싶나, 저 멀리 기차를 타고 갈까, 저 멀리 버스를 타고 갈까, 불어라 봄바람아, 바람 따라 가고 싶네.”(<불어라 봄바람>) 그녀는 봄바람이다. 꽃빛을 머금은 따스한 훈풍이 뺨을 만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꽃그늘에 앉아 향기에 취한다. 꽃분홍 스카프가 바람에 휘감긴다. 바람이 잡아당기는 그녀의 머리카락. 꽃비가 쏟아진다. 봄이 절정에 다다른다.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의 음 하나하나마다 꽃들을 피운다. 꽃잎 하나하나가 음표 같다. 꽃 수류탄이 터진다. 만발(滿發)이다. 꽃대궐 속이다. “나도 몰래 붉어진 내 얼굴”(<나도 몰래>)로, “나도 몰래 약해진 마음”으로 김정미라는 환한 빛을 끌어당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봄 봄 봄이야.”(<봄>)

김정미.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나는 재즈라고 생각한다. 휘발한 봄 뒤에 남는 상실과 허무는 어찌할까. 봄의 나비처럼 팔랑, 햇빛 속으로 날아가는 목소리. 봄꽃처럼 스러져버리는 목소리. 봄날 들녘을 가로지르는 신기루처럼 그녀는 아스라하다. 춘몽(春夢)이다. 봄날의 낮에 시작되어 눈 내리는 겨울밤에 당도하는 그녀. 이상하게도 고독한 자의 음성을 닮았다. 저항할 수 없다. 폭파해버린 사랑의 봄을 지나왔다. “한없이 스며드는”(<고독한 마음>) 김정미의 노래가 나를 어루만진다. 사랑의 죽음을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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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사랑의 열기
대학생 밴드 마그마. 우리에게는 마그마보다 조하문이 익숙하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히트곡 때문이다. 마그마의 노래 <해야>는 조하문이 다녔던 대학의 응원가로 유명하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박두진, <해> 부분

1980년 엠비씨(MBC)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곡 <해야>는 연세대 출신 밴드 마그마가 모교의 교수였던 박두진의 시를 가사로 원용한 곡이다. 깜짝 놀랄 만하다. 이 시대에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니. 노래의 기술적 수준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박자와 코드와 화성과 리프를 알지 못한다. 조하문의 꾸밈없는 목소리는 고음 부분에서 갈라지기도 하지만, 이 노래가 품고 있는 격렬한 희망과 내부로 휘감기는 ‘싸이키’ 기타와 심장 박동을 묘사하고 있는 베이스가 표현해낸 햇빛의 찬란함이란! 청춘은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방사(放射)한다. 이루려고 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위대한 예술을 실현하는 경우. <해야>를 평가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하문의 스테인레스강(stainless steel) 같은 목소리가 쟁쟁 울려 퍼진다. 그의 목소리는 ‘라이트(light)’하지만, 마그마의 음악은 ‘헤비(heavy)’하다.

어느 날 우연히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 양지에 조그만 나무 하나 자라났었네 / 그 곁에 언제나 많은 꽃과 나비 있어서 / 어리고 연약한 그의 친구가 되었었네 / 하늘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었네 / 햇살이 비추는 따스한 봄날이었네 // 세월이 흘러서 나무는 어른이 되었네 / 사람이 찾아와 그늘에서 쉬곤 했었네 / 아무도 그 자릴 그냥 지나가지 않았네 / 나무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었네 / 유난히 파란 그 빛을 발하고 있네 / 무더운 날에도 시원한 여름이었네
?마그마, <잊혀진 사랑> 부분

앨범 한 장만 발표한 마그마의 다른 명곡 <잊혀진 사랑>이 찾아온다. 조하문이 작사 작곡하고 부르는 이 노래는 ‘사이키델릭 블루스’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기타 때문에 몸이 늘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감정의 열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기타 연주를 듣는데,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고, 세상의 질서는 무엇이냐고, 왜 우리는 희노애락 속에서 생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냐고. 문드러지는 기타와 흐느끼며 갈라지는 조하문의 절규가 마음에 파문을 만든다.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 나무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나무를 잊고 말았다. 사랑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의 행로가 그러하다. 노래의 ‘나무’를 사람으로, ‘나’라고 해도 좋다. 우리의 사랑은 나무 같을 것이다. 사랑하여 다 바쳤지만,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의 가치를 모른다. 사랑은 지워진다. 사랑은 잊혀진다. 사랑의 뼈만 남아 있다. 죽은 나무가 벌판의 뙤약볕 속에 박혀 있다. 마그마는 심벌즈를 부서뜨릴 것처럼, 기타줄을 끊을 것처럼 부정한다. 울부짖는 기타가 여름 폭풍처럼 달려온다. 태양이 입을 벌리고 으르렁댄다. 사랑이 들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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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사랑의 진실
어니언스(onions), 양파들, 보컬 듀오 이름이다. “아, 정말 나에게는 꿈이 되어 버렸네. 다시 한번 그려볼까 그대 모습. 눈 감고 생각하다 잠이 들면, 나는 어떡해.”(<사랑의 진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다시 만날 수 없다. 겨우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데, 잠 깨면, 그 사람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이 슬픔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고요한 밤 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곳”에 그대가 산다.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길 잃은 새 한 마리” 하늘을 맴돈다. <작은 새>의 간주. 피아노가 맑게 떤다. 임창제와 이수영의 코러스가 이어진다. 처연하다. 외로운 나의 분신, 그 새가, “그리운 집을 찾아 날아만” 가는데, 나는 자리에 붙박여 돌아오지 않는 님을 기다린다. 나는 가을만큼 차가워진다. 그대에게 <편지> 한 장을 쓴다.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나의 편지는 그대에게 도착하지 못할 것인데, 나는 읽히지도 않을 편지를 써서 가을 하늘에 날려보낸다. 바이올린이 울음을 건드리지만 울 수 없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나는 나목(裸木)이 된다. 흰 뼈가 된다. 나는 야위어 간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저기에서 멀어져 간다. 이별 후에야 사랑의 진실을 깨닫는다. 어니언스의 목소리는 가을 하늘 속으로 퍼진다. 파란 허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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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사랑의 무덤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이 창에 얼룩진다. (배우 문성근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배경인 함바집 흑백 텔레비전 속에서 <창밖의 여자>가 흘러나왔던 장선우의 <<꽃잎>>을 기억한다.) 사랑은, 어쩌면, 고통일지도 모른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애도라고 할 만하다. 조용필의 물음에 답한다. 아무도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름다워서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사랑했을 뿐이다. 지금 조용필은 <간양록>을 토해낸다. 부모를 잃고 통곡하는 자식이 보인다. 내가 이 거대한 가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발견하고 또 발견할 뿐이다. 조용필을 들으면서 사랑을 돌이켜본다.

사랑의 최후가 지나갔다. 나는 흔들린다. 노래가 나를 저격한다. 나는 뚫려 흘러내린다. “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 그래도 못 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사랑은 끝날 수 없다. 부정한들 달라지겠는가. 아니다. 사랑은 영원히 끝장났다.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 미워 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봐.”(<미워 미워 미워>) 잊을 것이다. 까맣게, 그 사람, 잊을 것이다.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겨울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그 겨울의 찻집>) 이제 나는 빙폭(氷瀑)이다. 영원히 부동(不動)할 것이다.

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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