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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J report] 통영 폐조선소를 ‘한국판 말뫼’로 … 시동 건 도시재생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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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8곳 시범사업지 지정

지역 실정에 맞춘 리모델링 성격

정부, 3~6년간 6조7000억원 투입

투기과열지구 서울·과천 등 제외

사업 시행 전 임대차 상생협약 맺어

‘젠트리피케이션’ 사전에 차단

정부 예산 빠듯 재원 마련 쉽지 않아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천마마을’. 집집마다 덮은 색색깔 파란 지붕 때문에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 문화마을과 맞닿은 곳이다. 보기엔 좋지만 급경사에 밀집한 저층 주택 노후도가 심각하다. 이곳에 정부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30억원을 들여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 공공주택 60가구, 임대주택 20가구를 짓고 공원과 마을 텃밭을 조성한다. 235m 길이의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설치한다. 이를 통해 젊은 층을 유입시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자생력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정부가 시동을 건 ‘도시재생 뉴딜’의 청사진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고 천마마을을 비롯한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지 68곳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시·도별로 사업 신청이 몰린 경기도가 8곳으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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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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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북·경남·경북이 6곳씩, 전남·인천은 5곳씩, 부산·대전·충남·충북·강원 4곳씩, 대구·광주·울산 3곳씩, 제주도 2곳, 세종시 1곳 등이었다. 서울은 제외됐다. 정부는 이곳에 3~6년간 약 6조7000억원을 투입해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 유병권 국토부 국토도시실장은 “당초 100여곳을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8·2 부동산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과천 등이 시범사업에서 제외돼 68곳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역 특색을 살린 곳이 시범사업지로 다수 선정됐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지는 통영이다. 내년부터 조선업 불황으로 침체한 폐조선소(신아조선소) 부지 등 50만9687㎡에 호텔·테마파크·박물관 등을 지어 문화·관광·해양산업 거점으로 조성한다. 사업비 규모만 1조1041억원에 이른다. 통영의 도시재생 사업은 1990년대 조선업 쇠퇴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혁신에 성공한 스웨덴 말뫼의 사례를 참고했다.

전남 목포에선 300여곳에 이르는 근대 건축물을 활용해 근대역사 체험길을 조성하는 내용이 채택됐다. 경남 하동에선 섬진강 인근의 폐철도공원·송림공원과 연계한 광평역사문화 간이역을 조성하기로 했다. 정보기술(IT)과 결합한 ‘스마트 시티’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부산 사하구는 태양광 발전을 활용한 경로당, 스마트 쓰레기 집하 서비스 구축 등을 내걸어 선정됐다. 인천 부평구는 노후 주거지 정비에 초점을 맞춰 미군부대 반환 부지를 매입해 일자리센터, 먹거리 마당, 오피스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남 순천시는 건물주·임차인 71명이 상생협약을 맺고 ‘공구 특화거리’를 조성하는 내용을 앞세웠다.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막기 위한 대책도 있다. 사업지에서 상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임대 기간을 장기로 한다든지 임대료 상승 폭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맺는 곳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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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뉴딜정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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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지로 선정된 곳은 내년 2월부터 사업을 추진한다. 정부는 재정을 지원하고 사업별 특성에 맞는 컨설팅을 한다. 도시재생 사업은 기존 ‘갈아엎기식’ 뉴타운·재개발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 뉴타운·재개발이 전면 철거를 전제로 한다면 도시재생은 지역 실정에 맞춘 ‘리모델링’ 성격이 강하다. 낡은 주택을 정비하고 아파트 단지 수준의 마을 주차장, 어린이집, 무인택배센터 등을 설치해 마을을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매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전국 500여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내년 초엔 향후 뉴딜 사업 비전과 정책 과제, 중장기 계획을 담은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가칭)’을 발표하기로 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유병권 국토도시실장은 “그동안 도시재생 사업에 연간 1500억원씩 투입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매년 (도시재생 사업에 투입하는) 정부 예산 2조원 외에도 주택도시기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업비 등 10조원 안팎을 투입해 동네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쉬운 얘기가 아니다. 정부 예산도 현재 연간 1500억원 수준인데 이를 2조원으로 증액해야 한다.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 LH는 부채가 133조원(부채비율 342%)에 달해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세금을 낭비했다고 지적받은 지자체 테마 사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노후화한 곳이 많은 서울이 사업지에서 빠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병권 실장은 “서울은 시장 상황을 보면서 추가 지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동산 투기를 어떻게 차단하느냐도 과제다. 서울에서 뉴타운 공약이 쏟아져 나왔던 2006년 한 해 동안 서울 집값은 20%가량 급등했다. 뉴타운 후보지를 대상으로 한 단타 매매도 극성을 부렸다. 박준형 국토부 도시재생사업기획단 지원정책과장은 “선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지를 상시 관리하겠다”며 “문제가 있으면 사업 시행을 연기하거나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재생 사업으로 인한 개발 이익도 논란거리다. 기존 건물이나 땅 주인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전재범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도 결국 누군가 개발이익을 가져갈 텐데 이를 어떻게 규제할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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