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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국정원이 온라인상 데이터 엿보는 ‘패킷 감청’ 위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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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헌재 헌소심판 공개변론서 공방

“기본권 침해” - “수사에 불가피”

청구인 “헌법상 영장주의 위반”

국정원 “법원이 엄격 심사·허가”



한겨레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모든 데이터를 통째로 중간에서 가로채 사용자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화면에 구현한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패킷감청’이 헌법상 허용되는가.

1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국가정보원의 ‘패킷감청’(인터넷 회선 제한조처)이 위헌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이 벌어졌다.

청구인인 문아무개 목사 쪽은 “기술적 한계가 있는 패킷감청으로 범죄와 무관한 이들의 정보까지 수집되는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정원 쪽은 “제3자 정보 취득은 유선전화 감청 등 다른 방법의 수사에서도 불가피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며 “엄격한 통제로 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맞섰다.

청구인 쪽은 “패킷감청은 수사기관이 인터넷 회선을 통해 송·수신되는 모든 디지털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제3자 정보나 범죄수사와 무관한 정보까지 수집하게 돼 국가수사기관의 무제한적이고 상시적인 감시를 가능케 한다”며 “개인의 사생활과 통신비밀의 자유 등을 무력화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 “범죄수사와 관련된 범위로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한 패킷감청에 대한 허가는 강제수사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일반영장 발부와 다름없다"며 "통제수단도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사후통지 절차도 빈약해 헌법상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청구인 쪽 참고인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패킷감청은 보편적·포괄적인 정보 수집으로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초래할 수 있어 사후적으로도 위헌성을 치유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패킷감청 자체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구인 쪽은 이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미러링’보다는 복제프로그램으로 패킷을 가로채 수집한 뒤 국정원 서버로 옮겨 재조합해 분석하는 방식으로 실제 패킷감청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통신 내용 뿐 아니라 통신 아닌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수집하고 있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제한조처 대상으로 볼 수 없고, 압수수색 대상으로도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쪽은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며, 근본적으로는 입법적 조처가 있어야 한다”면서 “다양한 선행 조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현행법상 패킷감청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헌재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국정원 쪽은 청구인의 헌법소원 심판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쪽은 이어 “현대 정보통신환경을 고려할 때 주요 범행의 저지나 범죄수사를 위해, 특히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이 불가능한 외국계 이메일 등을 이용하는 통신의 경우에는 인터넷 회선의 감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또 위헌 주장에 대해 "통신제한 조처의 대상이 특정 인터넷회선으로 한정되고 자료 취득도 범죄수사 관련 내용으로 제한되므로 무제한적·포괄적인 것도 아니고 수집-재조합-분석 과정을 거치므로 실시간 감청도 아니다”라며 “통비법의 남용 방지 규정과 법원의 엄격한 심사·허가 외에 관련자들의 비밀누설 금지 의무 등이 있어 실질적으로는 제3자 등의 사생활 침해에까지 이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쪽은 "감청은 본래 밀행성과 포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감청 범위의 포괄성이 인터넷회선 감청만의 특성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쪽은 재판관과의 일문일답에서 “패킷감청으로 얻은 정보를 열람했으나 실제 재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은 없다”며 “수사단서로 활용한 패킷감청 결과는 존안 조처하지만, 범죄와 무관한 정보는 90일 이후 자동적으로 파기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쪽은 “지금 기술로는 직접 열람하는 것 말고 제3자 정보 등을 걸러내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암호화된 패킷은 분석할 방법이 없어서 국정원 서버에 전달되기 전에 아예 버린다”고 설명했다.

이날 헌법재판관들은 패킷감청에서 제3자에 대한 감청이 불가피한 것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주심을 맡은 이선애 재판관은 "고정 아이피를 부여해 감청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공유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제3자에 대해서도 감청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이수 재판관은 "패킷감청의 최종분석을 끝내야만 넷주소를 특정할 수 있다면, 부득이 제3자의 정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안창호 재판관은 "감청대상자에게 감청 사실의 통지를 유예할 때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의 절차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패킷감청이 기술적 한계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면, 입법적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청구인 쪽은 "패킷감청 장비를 국정원이 아닌 법원 등 제3의 기구가 관리하도록 하는 절차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용의자가 보내거나 받은 우편물 및 전기통신에 대해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는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를 근거로 기독교평화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김아무개 목사와 문아무개 목사 등을 상대로 2015년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패킷감청을 벌였다. 문 목사는 감청 사실을 알게 된 뒤 지난해 3월 국정원의 감청 행위, 법원의 감청 허가, 감청의 근거가 된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 등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앞서, 전직 교사인 김아무개씨도 국정원의 감청 사실을 통보받은 뒤 2011년 3월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5년 넘게 심리가 미뤄지는 동안 김씨가 간암으로 사망하자, 헌재는 청구인 사망을 이유로 심판 종료를 선언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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