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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7) 땅의 흔들림…신이 게을렀거나, 신도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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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어나는 까닭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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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이은 포항 지진으로 한반도의 남쪽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진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발리섬의 아궁 화산이 지진을 동반한 분화를 시작했고,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악마가 화가 나서 몸을 떨 때 지진이 난다고 이야기한다는데, 악마는 왜 화가 난 것일까?

지진에 대해 오늘날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판구조론’이다. 지구는 여러 개의 판들로 덮여 있는데, 판들끼리 서로 밀다가 한쪽이 다른 쪽으로 이끌려 들어가면서 땅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인 설명이 있는데도 지진이 나면 어떤 종교인들은 신의 심판 운운하고, 어떤 정치인들은 지도자에 대한 경고 운운한다. 여전히 신화적인 허상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진짜 신화는 지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하늘에는 17층이 있고, 땅에는 9층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지상국이라고 하고, 신이 살고 있는 곳을 천상국이라고 한다. 17층 하늘과 9층 땅을 주재하는 이는 천신 압카언두리이다. 태초에는 땅이 없이 물만 하늘에 닿아 있었다. 압카언두리는 자기 모습대로 일남일녀를 만들어 돌 항아리에 넣은 뒤 물속에 던졌다. 항아리는 곧 수면 위를 떠다녔다. 그러다가 이들 둘이 결혼하여 많은 자손들을 낳았고, 여러 세대가 흐르면서 항아리도 따라서 점점 커졌다.

나중에 항아리 속에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압카언두리는 다시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을 만든다. 흙으로 아주 큰 땅을 만들어 물 위에 놓고는 큰 물고기 세 마리에게 땅을 등에 지라고 명했다. 그리고 천신 하나를 보내 며칠마다 한 번씩 먹을 것을 주게 했다. 천신이 게을러 이따금씩 제때 먹이를 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물고기들이 몸을 움직이는데, 이때 땅도 따라서 흔들린다. 이것이 지진이다.

만주족이 구전하고 있는 창세신화다. 압카언두리가 사람을 만든 뒤 돌 항아리 속에 넣어 물 위에 떠다니게 했다는 상상력이 흥미롭다. 인류를 낳은 돌, 대홍수 때의 방주, 영웅을 실어 나르는 돌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재미있는 대목은 흙으로 거대한 땅을 만들어 물고기 등에 얹어 놓았다는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은 이족 서사시 <므이꺼>에도 나타난다. 천신 거쯔가 암수 물고기 두 마리로 하여금 땅을 지게 한다. 라후족 서사시 <무파미파>의 물고기는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을 떠받치고 있다. 이는 주로 어렵을 통해 살아갔던 민족들의 일상생활에 기반을 둔 상상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천신 압카언두리의 창조 행위는 물고기 등에 땅을 고정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창조란 일회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신은 대어 셋을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만주 신화는 게으른 천신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천신이 물고기들을 굶주리게 만들어 그들이 몸을 움직이면 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만주 신화는 지진의 원인을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천신의 게으름’에서 찾고 있다. 물고기 담당 천신이 왜 게으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하지만 창조된 세계를 부지런히 관리해야 할 신의 직무태만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주 신화와 달리 신도 어쩔 수 없는 지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화도 적지 않다. 몽골 창세신화도 그런 사례다. 몽골 신화의 창조자는 마이다르이다. 마이다르는 미륵불의 몽골식 이름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신화 속의 형상은 여신이다. 대홍수로 인류가 절멸했는데, 수미산(Sumeru) 꼭대기 동굴 속에 몇 사람이 살아남아 있었다. 키가 반 자도 안되는 소인들이었다. 여신은 이들을 위해 대지를 만든다.

마이다르 여신이 흰색 신마(神馬)를 타고 푸른 물 위를 분주히 오가며 신마의 발굽으로 수면을 밟을 때마다 불꽃이 퍼지더니 연소된 재가 수면 위로 떨어졌다. 재는 쌓일수록 두꺼워져 점점 한 덩어리의 가없는 대지로 변했다. 대지가 수면을 내리누르면서 서서히 가라앉자 하늘과 땅이 천천히 나뉘어졌다. 대지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는 한 덩어리의 크고 평평한 판이었는데, 물 위에 떠 있어서 늘 흔들렸다. 마이다르는 대신(大神) 거북이 한 마리를 물속으로 보내 등으로 대지를 떠받쳐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북이 아주 피곤해서 허리와 다리를 펼 때가 있는데, 그때 지진이 발생한다. 신마의 발굽이 일으킨 불은 수증기를 증발시켜 구름을 만들었고, 불티는 공중으로 날아올라가 별이 되었다.

지진이 일어나는 까닭은 단순하다. 여신 마이다르의 명으로 대지를 떠받치고 있는 거북이가 피곤해서 몸을 움직일 때 따라서 땅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거북이가 허리와 다리를 펴는 것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물조차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움직임은 생명의 본성이다. 신도 그렇다. 그러니까 거북이 신의 움직임은 창조자 마이다르 여신도 제어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다. 역으로 말하면 움직임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니까 거북이의 움직임은, 나아가 지진은 대지가 살아 있다는 좌증이다. 몽골 신화에서 지진은 창조신의 능력 바깥에 있다. 아니 지진 자체가 창조신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몽골 신화처럼 지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화는 아주 많다. 어웡키족 신화에서는 창조 과정에 동참하는 니샨샤만이 대지를 떠받치고 있는 신귀(神龜)의 몸을 화살로 꿰뚫어 고정시켜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귀가 이따금 움직여 지진이 난다. 힌두 신화에서는 땅을 지탱하고 있는 여덟 마리의 코끼리가 거북의 등 위에 서 있는데, 거북이는 다시 똬리를 튼 뱀 아난타 위에 있다. 가장 밑에 있는 아난타가 움직일 때 거북도 움직이고, 연달아 코끼리가 움직이면 지진이 난다.

그런데 지진에 대한 창조신의 역할을 강조할 경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카자흐스탄을 이루고 있는 카자흐족 신화가 그런 경우이다.

태초에 하늘도 없고 땅도 없을 때 오직 조물주만 있었다. 조물주는 사람처럼 사지와 오관이 있어 귀로 들을 수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있었고, 혀로 말할 수 있었다. 조물주가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 처음에 하늘은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땅은 자신이 밑에 있는 것에 불만이어서 늘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래서 조물주는 거대한 소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뿔 사이에 땅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소가 너무 고집이 세서 한쪽 뿔로만 땅을 지탱하려 했기 때문에 땅의 움직임은 끊이질 않았다. 특히 소가 땅을 한쪽 뿔에서 다른 쪽 뿔로 옮길 때 아주 큰 지진까지 일어났다. 조물주는 화가 나서 큰 산을 못으로 삼아 소의 머리에 땅을 고정했다.

카자흐 신화에서 대지를 떠받치고 있는 존재는 거대한 소다. 뿔로 받치고 있으니 아마도 황소일 것이다. 황소는 민족에 따라 거북이·물고기 등으로 변형될 수 있으니 큰 차이가 없다. 이 신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소와 조물주의 갈등이다. 소는 조물주가 끌고 온 존재지만 조물주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조물주의 의지와 달리 고집스레 한 뿔로만 땅을 떠받치고, 이 뿔에서 저 뿔로 땅을 옮기니 크고 작은 지진이 난다. 여기까지는 창조신도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몽골 신화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자흐 신화는 더 나간다. 지진을 견디지 못한 창조주가 소가 땅을 이리저리 옮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땅을 고정했다는 것이다. 큰 산을 못으로 썼다니 대단한 상상력이다.

그렇다면 못 박힌 땅은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소가 피곤해서 다리를 움직이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지만 카자흐 신화는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땅 위에 풀이 자라자 무게가 가벼워져 다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창조주가 높고 큰 산을 많이 만들어 대지를 안정시켰다는 식으로 변형된 이본(異本)만 전해지고 있다.

왜 카자흐 신화는 지진이 나는 까닭을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진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조물주가 일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단서는 이 창세신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첫 인간의 유래와 이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조물주는 땅을 만든 뒤 흙으로 한 쌍의 인형을 빚어 그들의 입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하여 창조된 인류의 시조는 아다무아타·아다무아나 커플이다. 흙으로 만들어 혼을 불어넣었다는 창조담은 <토라>에 보인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 ‘아담’이라는 이름은 <토라>나 <코란>에 모두 나타난다. 카자흐 신화의 커플 이름은 동방정교회나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서 카자흐스탄식으로 변형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름만이 아니라 신화 자체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토라>나 <코란>처럼 창조주의 절대적 권위가 강조되면 지진은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는다. 지진은 창조주의 통제 아래 있다. 카자흐 신화의 조물주는 소뿔 위의 대지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버렸다. 카자흐 신화에 이런 신화소가 부가된 것은 창조주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신화가 여기까지 확장되면 이제 지진이 안 일어나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창조주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신화가 종교 담론이 되면 지진은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된다.

고향에 계신 노모는 지진 소식이 들리면 곧장 말세라는 말을 입에 올리시곤 한다. 포항 지진을 종교인 과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설교한 목사도 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재이(災異)에 대한 시각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는 지진의 원인을 신의 게으름에서 찾는다. 더 많은 신화들은 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신의 분노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시아 신화는 드물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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