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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view point] AI투자 시동건 日연기금 1년째 손도 못댄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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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GPIF)이 일본 정보기술(IT)회사 소니와 손잡는다는 한 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연금투자에 인공지능(AI)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는 데 AI 전문인력이 많은 소니의 힘을 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간단명료한 메시지였지만 읽을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연구의 주된 목적은 AI를 이용한 투자 요인 분석 및 리스크 매니지먼트. 그동안 GPIF의 돈을 굴려오던 인간 펀드매니저가 제대로 된 투자 의사 결정을 했는지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앞으로 AI를 활용할 방법은 없는지를 찾아보겠다는 얘기다. 업무를 맡은 '소니컴퓨터사이언스랩(소니CSL)'은 일본 IT업계의 자존심인 소니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조직이다.

몇 해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서 소니CSL이 출품한 '식탁 신문'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조명 하나를 작동시키면 식탁이 거대한 터치스크린으로 변하는 제품이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아침식사를 하면서 손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 테이블 바닥이 조간신문으로 변해 필요한 부분을 줌인해서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지금은 상용화된 스마트밴드를 10년 전부터 내놨던 곳도 바로 여기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이 소니CSL을 '워크맨 신화를 재창조할 곳'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혁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1조2000억달러(약 1354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GPIF가 혁신의 아이콘, 소니CSL과 손잡고 AI 연구에 나선다면 못할 게 없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빅데이터를 활용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다. 당시엔 빅데이터 계량분석을 이용해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유야무야됐다. 의사결정을 해줘야 할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5개월째 공석인 상황에서 빅데이터 활용은 남의 나라 얘기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정권의 압력에 굴해 삼성전자 승계에 국민연금 의결권을 이용했다는 악몽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니와 손잡은 일본 GPIF처럼 빅데이터 인재가 가장 많다는 삼성과 국민연금이 협업하기를 기대하는 건 상상조차 안 된다. 다른 기업과의 협업도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은 AI, 사물인터넷, 로봇기술 등이 융복합해서 만들어지는 차세대 기술혁신 시대다. 자본시장의 갈라파고스였던 일본 연기금조차 이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혁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발 빠르게 대처해 세계 10위권까지 도약했던 게 한국 경제다.

국민연금도 지금 4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삼성 트라우마에만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를 놓친다는 것은 국민의 노후를 저버리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잃는 것이다.

[한예경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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