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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北, 中 유령회사 '션강' 동원 자금 조달 "국제감시망 노출로 꼬리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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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제재 회피를 위해 역외 유령회사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금융망에 노출되는 빈도를 높여 불법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중앙일보

세종연구소와 미 싱크탱크 C4ADS가 12일 펴낸 보고서. 북한의 불법적 외화 거래 실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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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연구소와 미 민간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는 12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외환 시장 효과-달러, 해외 네트워크, 북한의 불법금융’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 정찰총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불법 외환 거래 실태를 소개했다. 정찰총국이 역외에 세운 유령회사 뒤에 숨어 불법적으로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션강무역투자회사(深光?易投?有限公司)’라는 회사를 사례로 들었다. C4ADS가 입수한 기밀 정보에 따르면 홍콩에 기반을 둔 션강은 2013년 1월 동아시아의 한 전자 장치 재판매 회사에게 1만 5000달러를 주고 물품을 구매했다. 재판매 회사는 자신들이 북한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막상 등장한 건 ‘글로콤’이라는 회사였다. 대표인 편원구라는 사람이 해당 회사에 “글로콤 중국 지사에서 대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연락해왔다. 구매한 물건도 글로콤이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콤은 북한이 관리하는 ‘팬 시스템즈 평양’의 위장회사로 알려져 있다. 팬 시스템즈를 관리하는 것은 정찰총국 요원인 량수녀라는 인물이다. 량수녀는 무기 거래를 전담하는 정찰총국 산하 519호 연락소 소속이다. 그는 팬 시스템즈와 유령회사를 내세워 역외 계좌를 집중 개설하고, 이를 활용해 북한으로 자금을 보냈다. 달러와 유로화를 다루는 역외 계좌들은 북한 대동신용은행(DCB)이 관리했다. 대동신용은행은 1998년 이후 팬 시스템즈와 중국, 홍콩, 싱가포르에 있는 20여개 회사 간 외환 거래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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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회사 &#39;글로콤&#39;의 홈페이지. 사실은 북한 정찰총국이 관리하는 &#39;팬 시스템즈 평양&#39;이라는 북한 회사의 위장회사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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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사실상 정찰총국이 관리하는 글로콤으로 간 점 등으로 미뤄 션강이 전자 장치를 구매하는 과정에도 결국은 대동신용은행이 관여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짐작했다. 유령회사를 내세워 북한이 관여된 거래라는 사실을 숨긴 덕에 별 문제 없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외환 계좌까지 거쳐 돈을 입금했다는 것이다.

션강은 2011년 6월 설립됐으며, 유일 주주는 선천람이라는 사람으로 돼 있다. 그의 주소지는 중국 단둥이었다. 션강은 세계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위장했다. 북한의 유령회사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션강은 러시아 회사와도 거래한 기록이 있었다. 러시아 세관 기록에는 션강이 위탁자로서 올 3월 러시아 어업회사로부터 289t 상당의 수산물을 선적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교역 기록을 확인한 결과 올 6월 ‘조선청송무역회사’라는 북한 회사가 해당 러시아 어업 회사로부터 수산물을 수입했다.

보고서는 “‘청송’은 ‘그린 파인(Green Pine)’의 한국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가 이름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 ‘그린 파인’은 정찰총국이 관리하는 불법 무기거래 회사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이름을 교묘하게 바꿨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이처럼 제재망을 피해 외환 거래를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고 있지만, 이런 불법적 수단이 오히려 제재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는 결국 정찰총국이 자금 조달을 위해 국제금융망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제감시망을 적절히 가동하면 적발이 가능하다고 봐서다.

연구에 참여한 세종연구소의 우정엽 연구위원은 “이번에 밝혀낸 션강 건에서 보듯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에 있는 회사를 통해 외화 거래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국제금융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돈의 흐름을 좇아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화 획득을 틀어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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